<Image Source: http://www.mirror.co.uk/sport/football/news/liverpool-borussia-dortmund-fans-fall-7756842>


1. 그제 유로파리그 8강 2차전에서 리버풀이 도르트문트를 4-3으로 꺾고 4강에 오른 경기는 축구팬들 사이에서 이스탄불의 기적에 버금가는 역대급 명경기로 이야기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 경기 시작에 앞서 27년 전 힐스버로 참사 추모식이 열렸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대부분 잘 모르거나 혹은 무관심한 것 같다.(위 추모 사진 참조)


2. 많은 한국인들에게 훌리건 난동으로 기억되고 있는 힐스버로 참사는 1989년 4월 15일 리버풀과 노팅엄 포리스트 간의 FA컵 준결승 경기 도중 관중 96명이 숨지고 766명이 부상당한 영국 축구 역사상 최악의 재난이다. 이 참사는(영국 경찰의 주장과 달리) 술취한 리버풀팬들의 난동 때문이 아니라 영국 경찰의 상황 판단 미숙과 경기장 안팎에 대한 통제 실패에 그 원인이 있었다. 이런 사실은 참사 직후에 있었던 제1차 진상조사위원회를 통해서도 바로 밝혀진 바 있다.


3. 영국 경찰은 사건 초기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사건 희생자들이 술에 취해 있었다거나 전과가 있었다거나 하는 식으로 증거와 증언을 조작함으로써 사건의 진실을 숨기는 데 조직적으로 가담했다. 즉, 경찰의 실수를 덮기 위해 무고한 희생자들을 훌리건으로 몰았던 것. The Sun지를 포함한 몇몇 영국 미디어들이 이를 그대로 받아 쓰거나 악의적으로 보도함으로써 희생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유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참고로 리버풀팬은 이 일때문에 The Sun지를 절독하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저주 수준으로 욕한다. 심지어 작년 영국 총선 직전에 밀리번드 당시 영국 노동당 당수가 The Sun지와 인터뷰 했다는 이유만으로 노동당 내부와 리버풀팬들로부터 어마어마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Source: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2657625/Red-Ed-humiliated-apologises-posing-The-Sun-Hillsborough-backlash-brings-new-nightmare-day.html


4. 유가족들의 끈질긴 요청을 받아들여 영국 정부는 두 차례 더 진상조사위원회를 발족시켰으며 2009년 발족한 마지막 진상조사위원회는 2012년 진상보고서를 통해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놓는다. "어떤 리버풀팬도 힐스버로 참사에 책임이 없으며, 이 사태의 원인은 전적으로 경찰의 통제 부재에 있다. 또한, 사망자 96명 중 최소한 41명은 적절한 응급조치를 받았다면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보고서는 경찰이 적절한 대응을 했다면 몇 명을 구할 수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적시함으로써 정부의 책임과 역할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5. 2012년에 나온 이 최종 진상조사보고서를 바탕으로 2014년 3월 31일부터 힐스버로 참사 관련 새로운 재판이 시작되었다. 참사가 일어난 지 무려 25년만에 다시 재판이 시작된 것이다. 이때 영국에서 생활하고 있었기에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영국 BBC는 주요 시간대 뉴스의 거의 7~8분 가량을 이 소식에 할당했다. 힐스버로 참사가 무엇이고 누가 희생자이며 최종 진상보고서의 내용은 무엇이며 유족의 반응은 어떤지를 아주 차분하면서도 상세하게 보도했다.


6. 영국에서 살다 보면 영국사회 전체가 안전에 대해서는 어떤 강박증이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인데 이런 안전의식이 선진국이기에 당연히 생긴 것이 아님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영국 또한 수많은 대형 재난과 참사로 현대사가 얼룩져 있다. 영국이 한국보다 안전한 이유는 재난과 참사 이후 시민사회 전체가 이를 개선하기 위해 함께 싸웠기 때문이지 영국 정부가 스스로 개선해줬기 때문이 아니다.(다른 참사나 재난을 보더라도 영국 정부도 한국처럼 항상 진실을 소극적으로는 은폐를, 적극적으로는 조작하려고 했다.) 많은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그침없는 노력과 투쟁을 통해 영국 사회 전체가 안전한 사회라는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이다.


7. 한국으로 돌아와 세월호 이야기를 해보자. 세월호, 이제 지겹고 그만 했으면 하는가? 세월호 유족들의 투쟁이 당신과 당신 가족의 안전한 미래를 지탱하는대도? 아니, 우리는 오히려 함께 더 독하게 되물어야 한다. 정부가 적절한 대응을 했다면 도대체 몇 명을 더 구할 수 있었는지를!


2016년 4월 17일

신상희 


덧붙여) 힐스버로 참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https://en.wikipedia.org/wiki/Hillsborough_disaster 를 참조하기 바란다.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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