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학교 초년 시절. 시대의 불의(?)에 대한 분노인지, 아니면 부족한 내 자신의 내면에 대한 부끄러움때문이었는지, 나름대로 열정으로 불타 오르며 진보적인 사상으로 일컬어지던 여러 체계를 공부하고 그 틀에 내 자신을 참 많이 우겨 넣을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2. 여성운동 혹은 페미니즘을 접하고서 나도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되어야겠다고 여러번 다짐하고 실천이랍시고 한다고 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의 내 모습이란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그런 이중적인 모습에 다름아니었나 싶다.


3. 사실 나는, 신경숙의 [배드민턴 치는 여자]라는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남자에게는 자지가 있고 여자에게는 보지가 있는 - 아, 내 일생에 내 몸에 있는 신체 한 부위를 그냥 평범하게 이렇게 글로 표현한 적이나 있었던가? - 그런 신체적 차이가 있을 뿐, 그 둘의 진정한 다름(!)에 대해서 그리 심각히 고민해 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소설을 읽으며, 어쩌면 여자와 남자는 마치 지평선에 맞닿아 있는 하늘과 땅처럼 붙은 듯이 혹은 한 몸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서로 만날 수 없는 다른 세상의 다른 존재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뿌옇게 했던 적이 있다. 속눈썹과 포크레인, 그 둘의 상징처럼 말이다.


4. (정)현경의 책,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거야1, 2]와 [미래로부터 온 편지]를 읽었다. 현경은 - 호주제 폐지에 동참하는 그의 뜻을 존중하여 아버지 성을 뺀다. - 얼마 전에 내가 언급했던 바와 같이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미국의 유니언신학대학의 종신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이다. 무위당 장일순선생과의 대화를 읽으며 그가 에코페미니스트적인 사상을 지니고 있구나 정도로 그를 이해하고 있던 차에, 이번에 그의 글과 생각을 본격적으로 읽으며 나름대로 참 치열하게 "참나(true-self)"를 찾아 나섰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5. 어쩌면 나와 현경의 만남도 단순히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필연적인 구석들이 많다. 장일순선생과 대화를 나눴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찾은 것은 아니었고, 그가 고민하던 많은 내용들이 어쩌면 나의 현재의 생각들과 연결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그는 갑자기 책으로 나에게 다가와 버렸으니까 말이다. 마치, 너는 나를 알아야만 한다는 그런 운명론적인 계시처럼 말이다.


6. 현경의 책은, 어찌보면 신파조의 성공한 여자 이야기로도 읽힌다. 사실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거야1,2]는 그의 성장담이니까. 상처 입고 분노하고 오해받고 배신당하고 그러면서도 주변의 온갖 역경을 헤치고 결국은 미국의 명문 신학대학인 유니언신학대학의 아시아 최초 종신 여교수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거칠게 쓰여진 그의 글을 조금만 떨어져 읽다보면 그가 무엇을 고민했는지, 그리고 그의 사상과 행보가 왜 절절한지를 느끼게 된다.


7. 그는 자신의 글을 통해 그가 어떻게 새롭게 태어났는지에 대해 은유적이고도 상징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는 이제 이 어머니 대지와 사회문명은 가부장적 자본주의와 가부장적 남성우월적 종교 근본주의, 남성중심의 사상 등에 의해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선언한다. 예수, 석가, 마호메드 등이 뛰어난 성인이지만, 그들도 결국은 남신이며, 그러니 이제 앞으로 한 40년간은 기꺼이 안녕하자고 선언해 버린다. 서구의 사상체계가 진보적으로 보이지만, 그런 것들 또한 서구중심의 - 즉 남성중심의 - 사고체계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으며, 그러한 상황에서 어떠한 탈출구도 못찾고 있다고 과감히 선언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으며, 그러한 해결은 바로 여신(Goddess)로부터 찾아야한다고 주장한다. 여신은 실제의 여신이며, 동시에 하나의 상징 체계이다. 그가 지구를 살리기 위한 환경과 평화의 지킴이로 이름붙인 지구민병대의 이름은 바로 "살림이스트(Salimist)"이다. 우리 어머님들이 하시던 집안 "살림", 부엌 "살림"의 그 "살림"말이다. 이 "살림"은 죽어가는 모든 것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과감하게 - 맑스의 공산당 선언 처럼 - "살림이스트 선언"을 하며, 지구를 살릴 지구민병대인 "살림이스트"를 조직해야함을 이야기한다. 그가 살림이스트라는 단어를 사용함에 나는 주목했다. 그것은 그가 서구로 상징되는 남성론적 체계 - 학문이든 사상이든 사회이든 - 에서 그가 더 이상 얻을 것이 없음을 선언한 것이며, 동시에 지금껏 멸시받고 천대받았던 제3세계 - 이것이 여성성으로 읽히기도 한다. - 에서만이 새로운 대안적 사고가 출발할 수 있음을 암시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당당함이며, 지금껏 우리가 주눅들었던 혹은 여성성이 주눅들었던 서구 혹은 남성성에 대해 "감자를 먹이는 것"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글에는 이러한 사실과 상징체계들이 뒤섞여 있으며, 실제로 그의 글 중에 많은 부분은 그가 겪었던 영적인 체험에 대해 서술하고 있기도 하다.


8. 맑스와 레닌의 책을 읽다가, 혹은 월러스틴이나 촘스키의 글을 읽으며 뭔가 허전하게 내게 다가오던 그런 서늘함들. 그런데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내면에 그 어떤 보물도 없는 것인가? 언제까지 학문과 사상을 수입해야만 하는가? 우리가 곧 변방이거늘, 그리고 늘 변방에서 새로운 사상이 태어나거늘, 우리가 우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진정 무엇인가 하는 것들 말이다. 어느덧 눈을 떠보니 그 많은 것들이 나로부터 오지 않은 것들이며, 나와 이 땅에 천착되어 있는 것이 아니더라는 의심말이다. 현경은 이 모든 의심과 고민을 단박에 날려버렸다. 남성(!)을 기꺼이 죽임으로써, 남성 위주의 서구를 죽임으로써, 한번에 그의 사상적 지평을 우주적으로 넓히고 말아버리더라는 것이다. 그러한 죽임은 다시삶으로 태어난다. 그래서 현경은 자궁을 많이 이야기한다. 다시 태어남의 공간.(현경의 글을 읽다보니 시인 김상미가 왜 그의 시에서 그리도 자궁에 대해 이야기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했지만, 학문 수입이나 하는 학문오퍼상(햄버거맨!!)이 아닌, 그 체계를 통렬히 날려버릴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그곳에서 길렀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나 매료시켜 버렸고, 내가 늘 고민하던 주제에 대해 큰 답변을 준 그에 너무 고맙다. 무너진 것은 남성성에 의존한 거대 변혁이론이었으며, 그것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했다고. 어쩌면 이제야 새로운 싸움이 시작된 것이라고. 그것은 자본주의와 서구로 상징되는 남성성과의 싸움일수도 있겠다고. 그리고 그러한 싸움을 위한 우리의 무기는 바로 우리 내면에서부터 찾아야한다고. 우리가 곧 여신 혹은 여성일 수 밖에 없으며, 그러한 지평에서 세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무너져야할 것은 무너져야할 뿐이라고.


9. 요즘은 곳곳에서 해월 최시형과 수운 최제우를 만난다. 아마도 그들도 운명처럼 다시 나를 부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배어난다.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서 하나의 종교로서만 만났던 천도교 혹은 동학이 종교만이 아닌 심오한 사상체계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겨우 알았고, 그 사상체계가 지금껏 종교라는 외피때문에 너무나 많이 가려져왔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조금씩 들고 있다. 점수따기 위해 외웠던 인내천사상 -한울사상이, 그리고 유불선의 통합사상이 무엇인지 이제야 조금씩 다가오는 느낌이다. 내 안의 큰 보물을 찾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현경이 말하기를 여신은 자신을 믿고 사랑하며,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자만이 가장 이타적일 수 있단다. 나 혹은 우리를 긍정하고 사랑하며 그러한 내적 충만함과 자긍심으로부터 출발할 때 가장 이타적이면서도 혁명적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 안에 한울님이 계시고, 네 안에 한울님이 계시니, 너와 내가 다 같은 한울님이라"


2002년 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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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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