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15~16년 전에 영국 회사랑 같이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음. 당연히 공간정보 회사. 그 때 이 회사 직원은 한 35명 정도였고, 딱 환경, 원유, 송유관, 산업안전 등의 분야 GIS 활용에만 집중하고 있었음. 그래도 직원의 반 가까이는 해외에서 일하고 있었음. 그 모습을 보며 참 대단하다고 생각함. 오늘 오랜만에 이 회사가 생각나서 구글링해 봄. 이 회사 이제 전 세계에 24개 지사를 가지고 있는 그룹으로 성장함. 아예 이름을 *** Group이라고 해놨음. ㅎ 사업 분야가 다각화되기는 했지만 탄소배출관리라든가 원자력, 생물다양성과 같이 시대흐름이 반영된 유사 분야로 주로 신규 진출함. 경영학 성장전략에서 이야기하는 전형적인 F-E-R(Focus-Expand-Redefine)의 선순환 사이클를 거치며 발전한 것으로 보임. 15~16년 전에도 느꼈고 요즘 잉글랜드에서 생활하면서도 느끼지만 여기 영국 공간정보회사들은 전문 분야에 특화된 회사들이 많음. 한 분야에서 오랜 기간 업력을 쌓으며 세계적인 경쟁력을 쌓았다고나 할까? 어떤 핫이슈가 있더라도 그걸 무작정 좇는 게 아니라 그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자기 업종에 적용하여 경쟁력을 강화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느낌이 듦. 즉, 이슈 추종적 사업 경향이 약함. 그리고 자기들이 부족한 분야이거나 핵심이 아닌 분야는 과감하게 아웃소싱이나 협력을 통해서 해결함. 물론 한국식 갑질 안 함. 내가 16년 전에 '병'으로 일 해봐서 앎.


이에 반해 우리 회사를 포함한 한국 공간정보회사들은 전체적으로 깊이가 없는 듯한 느낌임. 이슈 추종자 같은 느낌이랄까? 한 4~5년에 한 번씩 바뀌는 정부 정책에 따라 업계의 대다수 업체들이 마치 레밍스처럼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 같음. 또 한 4~5년 지나면 또 다른 아이템으로 바꿔 타고. 그러니 노하우도 경쟁력도 쌓일 리가 만무함. 며칠 전에 어떤 회사 홈페이지 들어갔다가 자신들이 공간정보 빅데이터 전문 기업이라고 써 놓은 걸 보고서 웃다가 뿜을 뻔했음. 예전에는 다들 수치지도 제작 전문업체였다가 또 한참은 UIS 전문 업체였다가 또 한참은 3차원 전문 업체였다가 또 이제는 실내공간에 빅데이터 전문기업들이 곳곳에 가득함. 근데 그 세월 동안 정말 회사 자체의 경쟁력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는지 정말 반성해야 함. 내가 봤을 때 이런 회사 한국에 거의 없음. 그리고 한국 기업들은 정부와 대기업의 갑질을 욕하면서도 자기들이 일을 따면 정부나 대기업보다 더 심하게 갑질을 함. 한국 기업의 최대 경쟁력은 갑질이 아닐까 싶기도 함. 여하간... 내가 봤을 때 한국의 많은 공간정보기업들은 - 우리 회사를 포함해서 - 정부가 주는 아편에 중독되어 있음. 문제는, 한국 경제가 성숙해짐에 따라 공간정보 분야에 대한 투자는 가까운 미래에 급속히 줄기 시작할 것이라는 점. 이런 흐름은 이미 선진국의 공간정보 구축 분야 투자 동향 자료만 봐도 나옴. 인위적으로 사업 만들어내는데도 한계가 있음. 복지를 포함한 예산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데, 특별한 산업적 경쟁력도 사회적 가치도 창출하지 못하는 분야에 예산이 계속 배정되길 바라는 건 사실 도둑놈 심보임. 날은 어두워지고 먹구름은 몰려 오니 이제서야 진정한 고통을 맞을 것 같다는....


2014년 9월 25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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