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태국 코타오 해변에서 살해당한 영국인 커플 이야기를 이 블로그에 쓴 적이 있는데요.(http://endofcap.tistory.com/790와 http://endofcap.tistory.com/781 참조) 그 때 태국에서 살해당한 영국인 커플이 지난 2009년 이후 태국에서 살해당한 13번째 영국인이더군요. 


어제 2명의 미얀마인이 용의자로 체포되어서 사건이 일단락되어가는 모양새입니다만, 불과 3~4일 전까지만 해도 주 태국 영국대사까지 직접 나서서 태국 경찰청장을 면담하고 조속한 범인 체포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영국 언론에서는, 이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쿠테타로 타격을 받은 태국 관광업이 다시 한 번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라는 진담반 협박반의 보도를 연일 내보냈습니다. 이 말도 거짓이 아닌 게 유럽 관광객 중 가장 많이 태국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바로 영국인들입니다. 1년에 90만명 가까운 영국인이 태국을 방문합니다. 


구매력 높은 이런 영국 관광객 수를 지렛대 삼아 영국 정부와 언론이 나서서 지속적으로 압력을 행사하니, 영국인의 사고나 사건 해결에 태국 정부도 발벗고 나설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100명이나 되는 수사관이 작은 섬 코타오에 직접 상주하며 수사를 하고, 경찰청장이 수사를 진두지휘하는데 범인이 안 잡히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심지어 범인이 잘 안 잡히니까 태국 경찰청이 1만3천 파운드(우리돈 2,300 만원 가량)를 현상금으로 내걸기도 했습니다. 이번 미얀마인 2명의 체포에도 이 현상금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하더군요. 영국인이 한 명 살해당하면 태국 정부도 괴롭고 또 태국 정부가 더 빡세게 수사를 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면, 아마도 그것때문에라도 영국인에 대한 범죄가 줄어들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필리핀에서 올해 열번째 한국인이 살해를 당했습니다. 기사에도 나오지만 이 사건에 대한 외교부의 대처는 늘어진 낡은 테입 듣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장례 절차 지원과 조속한 사건 해결 촉구'입니다. 그 뒤에는 아마 이 사건 또한 여느 사건과 다르지 않게 또 잊혀질 겁니다. 외교부와 필리핀 주재 한국 대사관이 어떻게 이 사건에 대해 대응하고 있는지 언론을 통해 보도되지도 않을 것이며, 언론 또한 현지 특파원을 통해 이 사건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작년 필리핀 관광객 수 1위를 기록한 국가가 바로 한국입니다. 작년 1년 간 무려 110만명 가까운 한국인이 필리핀을 방문했고, 이 방문자 수는 2위 국가인 미국의 2배가 넘는 수치입니다. 필리핀 전체 관광객 4명 중 1명이 바로 한국인입니다. 이건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이고 우리의 엄청난 무기입니다. 


우리 정부와 언론은 영국처럼 바로 이런 막대한 관광객 수를 지렛대 삼아 필리핀 정부와 경찰을 압박해야 합니다. 한국인에 대한 지속적인 살인이 일어나도 범인이 잡히지 않으니 계속 발생하는 겁니다. 한국인에게 범죄를 저지르면(그것이 한국인의 사주에 의한 것이든 아니면 필리핀인이 직접 계획한 것이든)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체포되고 또 처벌받고야 만다는 인식이 필리핀 사회 전체적으로 공유된다면, 한국인에 대한 범죄는 줄었으면 줄었지 절대 지금처럼 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역할을 정부와 언론이 해야 하는 것이지요. 심하게 말해 한국인한테 범죄 저질렀다가는 범죄자 주변이 초토화된다는 느낌이 나도록 한국 정부가 나서서 압박하고 행동해야죠. 필리핀 정부가 제대로 안 하면 다양한 방식의 정책 수단을 동원하고 말입니다. 필리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한국 내에서 확산되어 필리핀을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 수가 준다면 아쉬운 쪽은 한국이 아니라 필리핀입니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 우리 정부는 외국에서의 한인 대상 범죄를 정부가 어쩔 수 없는 현지 범죄 정도나 혹은 개개인의 처신 잘못 정도로 치부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건 마치 세월호 사건을 대하는 정부 태도 같다고나 할까요? 정부도 어쩔 수 없었던 교통 사고(!)를 왜 정부 보고 뭐라고 하느냐는 느낌과 비슷하더라는 것이죠. 


제가 봤을 때는 정부의 노력 여하에 따라 정부가 세월호 사건을 막을 수 있었던 것처럼 정부가 노력하면 한인 대상 범죄를 충분히 줄일 수 있습니다. 한국인을 살해해도 별문제 없더라는 인식과 한국인을 살해하면 반드시 체포되고 막장난다는 인식 중 어느 쪽이 더 한인 대상 범죄를 줄이는데 기여하겠습니까? 한국 정부는 할려는 의지도 의욕도 계획도 없다는 느낌 뿐입니다. 가끔 왜 내가 내 세금 내면서 이 정부한테 충분한 보호 또한 못 받아야 하는지 그저 의심스럽고 또 한탄스러울 따름입니다.


2014년 10월 5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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