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대 위에서 나를 닮은 여자애가 북을 친다. 내 딸이다. 3일간의 풍물캠프를 마친 아이들이 부모들 앞에서 작은 공연을 한다. 다른 부모들도 나처럼 자신을 닮은 아이들의 공연을 보며 대견해하고 흡족해 마지않는다. 애들의 공연과 부모들의 표정을 번갈아 보며 묘하게도 생명이란 뭘까라는 의문에 빠져들었다.


2. 이 책 '인공생명의 탄생'은 1943년 슈뢰딩거의 아일랜드 강연 이후 70년 동안 현대 생물학(주로 분자생물학과 합성생물학)이 이룩한 발전과 성과를 담고 있다. 양자물리학자인 슈뢰딩거가 이 책의 첫머리를 장식한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생명체 또한 물리 법칙의 적용을 받는 '물질적 존재'일 것으로 추측했으며 '정보로서의 생명'이라는 관점을 제시했다. 생명체에는 무생물과 달리 뭔가 특별함이 있다는 생기론이나 생명과 영혼을 결부시키는 종교와는 반대되는 지극히 환원론적, 유물론적 관점이었던 셈이다.


3. 저자 크레이그 벤터는 합성생물학의 선구자다. 그는 컴퓨터로 설계한 합성 DNA를 이용해 생명을 탄생시킴으로써 슈뢰딩거가 옳았음을 증명했다. DNA는 생명체의 근간 프로그램이며 생명체란 DNA 프로그램의 지시를 따르는 무수한 유기 로봇들의 집합일 따름이다. DNA 정보는 이제 컴퓨터에 디지털화되어 저장되며 컴퓨터에서 합성된 DNA가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킬 수 있는 시대를 우리는 맞이하고 있다.


4. 이런 과정은 3D 프린터와 유사하다. 3D 프린터에서 중요한 것은 데이터다. 객체가 존재하면 스캐닝을 통해 디지털화하고 객체가 없다면 모델링을 통해 만든 뒤 이를 3D 프린터로 찍어낸다. 크레이그 벤터도 합성생물학에서 유사한 과정을 구현했다. 실재 생명체는 유전자 서열을 읽어내어 디지털화하고 없는 경우는 실험실에서 유전자 서열을 합성한 뒤 이를 생명체 합성기계를 통해 찍어내면 된다. 실제로 이런 과정을 통해 합성생명체를 탄생시켰다.


5. 생명체 정보가 디지털화된다는 건 그 정보가 쉽게 복사, 수정, 전송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제 생명체 정보는 빛의 속도로 이동한다. 자신의 병인에 맞게 수정된 백신 정보를 전송받아 집에서 출력할 수 있게 되며, 외계 생명체를 채취해 지구로 가져오는 대신 DNA 정보만을 전송하여 지구에서 복원할 수도 있다. 그래서 책의 원제가 'Life at the Speed of Light'이다.


6. 사실 크레이그 벤터가 창조한 것은 숙주 세포를 자기 자신으로 바꿔버리는 일종의 바이러스다. 즉, 분열을 통해 자기복제를 스스로 달성할 수준의 것은 아니다. 혹자는 합성생명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합성유전체를 만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DNA의 ACTG에 해당하는 화학물질을 결합하고 합성함으로써 생명체를 탄생시켰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7.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공지능이 이런 과정을 관장하며 새로운 합성생명을 만든다면 과연 어떤 생명을 만들까 하는 생각 말이다. 특이점이 멀지 않았으니 그저 공상만은 아닐 게다.


덧붙여) 슈뢰딩거의 여성편력과 바람기가 '영감을 얻기 위한 격렬한 성적 모험 추구'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ㅎ


인공생명의 탄생 - 합성생물학은 어떻게 인공생명을 만들었는가 크레이그 벤터 (지은이), 김명주 (옮긴이), 이대한 (감수) | 바다출판사 | 2018-10-29 | 원제 Life at the Speed of Light: From the Double Helix to the Dawn of Digital Life (2013년) 

2019년 1월 6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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