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빠, 왜 어른들은 애들이 잘못한 게 있으면 애들이 울 때까지 생트집을 계속 잡아?"
"그게 아니라 애들이 우니까 생트집을 더 못 잡는 게 아닐까? 사실 더 하고 싶을 거야."

 

2. 
애가 만화 삼국지를 다 읽더니 맨날 내게 작대기를 들이대며, "역적 조조는 청룡언월도를 받아라!" "내 역적의 목을 베어 큰 공을 세우리라" 외쳐댄다. 어제는 삼국지를 세 번 안 읽은 사람하고는 대화를 안 한다며 아빠한테 말도 안 걸더니... 아, 어쩌다 삼국지를 읽게 된겨??

 

3. 
오랜만에 딸과 함께 자전거 타기. 애가 많이 컸다. 어릴 적 산 자전거 안장을 끝까지 올려줘도 이제 다리가 다 안 펴진다. 새 자전거 사 줄 때가 된 듯. 밤공기는 쌀쌀하지만 천변에는 꽃들이 화사하다.

 

4. 
"아빠, 난 왜 수학을 못 해?"
"무슨 소리야? 너 매 학기 맨날 수학 '매우 잘함' 받아왔잖아?"
"요즘 학교에서 문제를 풀면 속도도 느리고 숫자도 자꾸 틀려."
"새로 배우는 거 연습이 부족해서 그렇지 뭐."
"근데, 친구들은 문제를 정말 빨리 풀고 다 맞아."
"네 친구들 학원 다니지 않냐?"
"응. 거의 다 다녀."
"너는 수학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산수를 못 하는 거 같은데? 얼마 전에 무슨 수 곱하기 77 할 때도 70 곱한 뒤 나온 값에서 0 하나만 뺀 수랑 바로 더하고 그랬잖아. 그리고 문제 풀 때 어떻게 하면 쉽게 풀까만 궁리하잖아. 그 건 원리를 잘 안다는 뜻이지. 산수 잘하는 건 19단 외우기 같은 거하고 학원 다니고 그러면 금방 늘어. 중요한 건 그 원리를 깨치는 거지."
"근데 어떤 사람들은 연습 안 해도 타고나는 사람이 있지 않아? 존 폰 노이만 같은 사람."
"그치. 근데 그런 사람은 70억 명 중의 한 명이야. 그런 사람하고 비교하지 말고."
"에르되시도 그렇잖아?"
"어떤 사람은 그렇게 태어나면서부터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어렸을 때 수학 못 하다가 나중에 잘해서 유명 수학자가 된 사람도 있고 그래. 오구리 히로시 같은 수학자도 어렸을 때는 수학 못 했고 아인슈타인도 수학을 잘했던 편은 아니었어. 오히려 한 가지 문제에 대해 십년 이상 집중해서 상대성 이론을 발명하기도 했고. 너는 수학동아를 제일 좋아하고 맨날 그런 수학책 읽으며 낄낄거리잖아. 수학 좋아한다는 증거이니 너무 신경쓰지 마렴."
"근데, 어른들은 왜 애들 학원에 보내?"
"공부 잘 하라고."
"공부 잘 하면 뭐가 좋아?"
"한국에서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지."
"좋은 대학에 가면 뭐가 좋아?"
"어른들은 자식들이 좋은 대학 나오면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더 나은 삶을 살 거라고 기대하지. 실제로 그렇게 더 나은 삶을 사는지는 모르겠다만 좋은 대학 나오면 더 많은 기회가 펼쳐지는 건 사실 같아."
"자식들이 잘 되면 어른들은 뭐가 좋아?"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건 부모의 본능이지. 그리고 옛날에는 자식이 잘 되면 늙었을 때 부모를 돌봐주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고."
"요즘은?"
"그런 기대 접은 사람들이 많지 아마. 너도 나중에 잘 되도 엄아아빠 안 돌볼 거잖아?"
"아니, 엄마만 돌볼 건데??"
"@.@"
#내가너를학원안보내는이유다

 

2019년 5월 15일
신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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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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