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과학책을 읽고 있던 애와의 대화.

"아빠, 모든 물질들은 다 원자로 이뤄져 있는데 왜 어떤 물질은 잘 찢어지고 어떤 물질은 단단하고 그래?"
"한글이 ㄱ부터 ㅎ까지 14개 자음, 그리고 ㅏ부터 ㅣ까지 10개의 모음으로 이뤄져 있잖아. 그런데, 그 24개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서 별의별 뜻을 가진 단어를 만들잖아. '단단하다', '약하다'처럼. 물질도 마찬가지지. 여러 원자들이 마치 글자들처럼 서로 얽히고설켜 분자를 이뤄서 상상도 못할 물질을 만들어 내는 거지."
"아빠, 블랙홀은 있는데 왜 화이트홀은 없어? 관측한 적이 없다는대?"
"블랙홀은 우리 입이라 열라 먹는데 이걸 소화한 뒤 똥 싸는 곳이 화이트홀이야. 근데 입에서부터 똥꼬까지 거리가 관측가능한 우주보다 더 길어서 그러는 거야."
"그게 관측가능한 우주라는 460억 광년보다 더 길다?"
"그렇지. 우주가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팽창하는데 그 460억 광년보다 더 떨어진 곳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 어떻게 알겠니?"
"근데 우주는 둥근 거야? 지구가 타원체라는 건 증명됐지만 우주는 잘 모르지 않아?"
"푸앵카레의 추측처럼 긴 줄을 가져다가 우주를 둘러보면 알겠지 뭐."
"우하하하 푸앵카레가 왜 나와? 근데, 이 모든 물질은 다 어디서 온 거야?"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에너지는 곧 물질이고 물질이 곧 에너지야. 우주가 탄생할 때 상상도 못할 엄청난 에너지가 있었단 이야기지."
"그럼 신이 그 에너지를 만든 거야?"
"아, 그건 아니고 빅뱅 과정에서 생긴 건데..."
"빅뱅은 들었는데 그게 어떻게 에너지를 만들어."
"좀 어려운데 쉽게 이야기하자면 에너지를 미리 빌려왔다고 해야 하나?"
"뭔 말이야?"
"네 지적이 맞아. 빅뱅우주론으로 가다보니 갑자기 뻥하고 모든 에너지가 생겨야 하거든. 근데,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야. 그래서 이 문제를 연구하다가 앨런 구스라는 학자가 인플레이션 이론, 우리말로 급팽창이론이라는 걸 주장했고 이 학자의 주장이 거의 모두 맞아 떨어졌지."
"급팽창이론이 뭐야?"
"(책장에서 맥스 테크마크의 책 '유니버스'를 빼서 급팽창이론 설명 그림을 보여주며...) 여기 보면 잘 설명되어 있어."
"와, 우주가 여러 개네? 평행우주야?"
"응. 우주가 너무 광대해서 평행우주이기도 하고, 급팽창을 하는 과정에서도 쪼개져서 평행우주가 나오기도 하고."
"와, 멋지다. 근데, 나는 이제 그림이나 그리고 놀아야겠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딸이 참 대견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딸이 영특하다고 생각하는데 딸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요즘 학교에서 이런저런 시험을 보면 다른 친구들이 너무 빨리 그리고 잘 풀어서 자신이 덜떨어진 게 아닌가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한다. 애에게 교과 과정의 문제를 풀게 해 보면 속도가 느리고 잔 실수가 있지만 개념은 잘 이해하고 있는 게 확실했다.

 

이야기를 들어 보면 딸의 친구들은 거의 대부분 학원을 다닌다. 학원을 보내지 않는 나로서는 애에게 벌써부터 열패감 같은 걸 심어주는 건 아닌가 싶어 조심스럽게 학원 다니는 걸 제안하기도 했다. 딸은 단칼에 거절했고.

 

애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니 슬슬 교육 문제를 신경쓰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주변이 그렇게 만든다. 애 친구 가족들 중에 교육에 예민한 사람들은 벌써부터 목동으로 강남으로 송파로 이사를 가기 시작했다. 애 친구들 대부분도 교과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게임 좋아하고 책 읽기 좋아하며 심심하면 엔트리나 스크래치로 프로그래밍도 하는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고민이 많다.

 

2019년 10월 31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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