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은퇴하신 한신대학교 철학과 김상일 교수는 저서 '수운과 화이트헤드'에서 '자체권'과 '소유권' 개념을 활용해 종교와 철학에 관한 흥미로운 논리를 전개하신다.

전기를 수송하기 위해 전선을 만들었지만 전선 자체의 저항 때문에 멀리 갈수록 전기 손실이 커지듯이, 신은 제 뜻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인간을 창조했지만 이제 인간은 신의 이름으로 폭력과 전쟁을 자행한다. '법'을 전달하기 위해 만든 보조적 수단일 뿐인 '몸'이 오히려 주도권을 행사하는 모순적 상황을 우리는 자주 목도하고 있다는 것.(사실 김상일 교수는 자체권이 꼭 소유권에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 둘의 모순적 갈등이 일종의 상호 되먹임 형태로 전개된다고 이야기한다. 여하간...)

멀리 갈 것 없이 난 사업하며 이런 자체권과 소유권의 모순적 갈등을 수도 없이 관찰한다. 우리가 표준을 도입하는 이유는 적은 비용으로 확장성과 상호운용성이 좋으며 특정 기술에 의존적이지 않은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다. 하지만, '표준'도 언제부터인가 성경이나 꾸란처럼 그 항목 구절 하나하나가 교조화되고 법 조항이 되어 해석되기 시작한다. 왜 그런 표준이 만들어졌는지 그 맥락이나 배경은 사라진 채 오직 준수 여부만을 기계적으로 점검한다.

쓸 이유가 없으니 WFS를 쓰지 않고 데이터를 GML로 교환할 필요가 없으니 GML을 사용하지 않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시스템 전반에 대한 이해없이 '표준적용보고서' 같은 것을 들이대며 그 사유를 설명하라고 요구한다. 왜 그리했는지 설명하는 게 하나의 부담이 되기 시작하며 어느새 표준이 '더 나은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걸림돌이 되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곤 한다.

실력 없는 자만이 경전을 문자 그대로 읽는다. 문자에 고착화되어 버린 법이 제 뜻을 널리 펼친 걸 본 적이 없다. 문자를 읽되 법을 이해해야 하건만 문자가 법을 압도하는 시대를 보고 있다. 부처가 뭐냐고? 그냥 '마른 똥 막대기'다.

2020년 4월 2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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