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오디오가 없다. 그래도 나름 만족하며 음악을 즐기고 있다. 어떤 학회에서 기념품으로 받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통해서다. 은백색의 동그란 스피커인데 딱 내 손 안에 들어오는 크기다. 두께는 제법 도톰한 편이다. 음악이 나오는 동안 스피커 바닥에서 푸른 빛이 주기적으로 깜빡거려 어떨 때는 UFO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스피커가 FM 라디오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스피커를 받은 지 한참 지나서였다. 충전하기 위해 USB 케이블을 연결한 채 무슨 버튼인가를 실수로 눌렀고 그때 라디오 특유의 백색소음이 스피커를 통해 쏟아져 나왔다. 인터넷으로 매뉴얼을 찾아봤지만, 기념품으로 제작된 모델인지 조작법을 찾을 수 없었고, 이 버튼 저 버튼을 요리조리 눌러보며 몇 번 시도한 뒤에야 라디오 채널을 기억시키는 데 성공했다. 흥미로운 점은 블루투스를 통해 내 휴대전화 음악을 이 스피커로 들으면 음질이 꽝인데, FM 음악을 들으면 제법 들을 만하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클래식과 국악을 제법 잘 재현해 준다.

 

이제 이 스피커는 식탁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내 FM 라디오 역할을 한다. 책을 읽을 때나 컴퓨터로 작업할 때 옆에서 잔잔히 클래식이나 국악을 들려주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식탁 위 영양제와 약병들에 묻혀 가끔 찾기 어렵기도 하지만 그래도 안테나 역할을 하는 USB 케이블을 잘 따라가면 금방 발견할 수 있다. 가끔은 이 스피커를 영양제 위에 올려놓고 들어서 어떤 공명효과로 좋은 음이 나는 게 아닌가 상상하기도 한다. 아까는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이 나오던데 들으며 한동안 감동하기도 했다. 음악 때문인지 이 스피커의 음질 때문인지 아니면 관련된 기억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2020년 6월 7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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