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씨의 '역사의 역사'를 읽었다. 코로나의 장점 중 하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노는데 정신없는 나마저도 어쩔 수 없이 책을 읽게 만드는 데 있다. 세상에는 언제나 양지와 음지가 있음을 기억하자.

 

이 책은 서구 역사의 창시자로 알려진 헤로도토스부터 시작해 중국의 사마천, 이슬람의 이븐 할둔 등을 거쳐 제레드 다이아몬드와 유발 하라리에 이르기까지 유명 역사가의 저술과 관점을 조망한다. 우리나라 역사가로는 박은식, 신채호, 백남운에 관해 이야기한다. 책 이름이 '역사의 역사'이니 일종의 메타역사서다. 구체적인 역사 자체보다는 그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과 사관의 변천을 조망한다. 역사의 교훈을 전하기 위해 깎을 것은 깎고 보탤 것은 보태는 공자의 춘추필법과 사실 그 자체가 말하게 함으로써 과거를 '있었던 그대로' 보여준다는 랑케필법의 교차와 변화도 흥미롭다.

 

왕조, 영웅, 국가, 서구 중심의 역사 서술은 이제 시야를 넓혀 문명이나 인류를 하나로 바라보는 시각으로 변천하고 있다. 거대하다 못해 무한에 가까운 우주에서 보자면 지구는 무가치한 별 중 하나일 뿐이다. 생김새와 믿는 사상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일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이제 인류가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지만 갈 길은 아직 멀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첫머리에 나오듯 지구란 그저 은하 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철거되어야 할 행성 중 하나라는 사실을 지구인이 함께 공유한다면 지금보다는 더 평화롭게 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유시민 씨는 인류의 진보가 꼭 개인의 행복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유발 하라리의 냉소적인 입장에 조금은 비판적이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그는 확실히 인류의 진보를 믿는 낙관주의자다. 나 개인적으로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인간과 인류의 미래에 회의적인데 말이다. 거실 소파에 거꾸로 누워 루이스 새커의 책을 읽으며 낄낄대는 딸에게서 그나마 작은 희망과 위안을 찾을 따름이다.

 

역사의 역사 - 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지은이)돌베개

 

2020년 8월 23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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