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은 오일 파스타를 먹었다. 아내가 올리브유와 파스타, 그리고 몇 가지 재료만으로 맛을 기막히게 냈다. 토마토와 해물이 들어간 파스타가 유명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토마토나 해물의 강한 맛을 꺼리는 편이다. 오늘 파스타는 담백하면서도 깔끔해 질리지 않고 오래 즐길 수 있었다.

 

소설가 김영하 또한 그의 시칠리아 여행기 '오래 준비해온 대답'에서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시칠리아에서 토마토와 해물이 없는 스파게티를 경험한 뒤, 토마토소스 없이 화이트와인과 올리브유만으로 스파게티를 직접 만들어 즐겨 먹는다. 신선한 조개가 있으면 조개를 추가하기도 한다.

 

시칠리아. 개인적으로 브린디시, 레체, 오스투니 같은 남부 이탈리아 도시를 2번가량 다녀왔다. 남부 이탈리아는 확실히 밀란, 꼬모, 베르가모 같은 북부 도시와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거리 풍경도 사람들의 생김새도 삶의 태도도 달랐다. 주중 대낮에도 길거리에는 일없어 보이는 멀쩡한 사람들이 많았고 도로와 시설은 잘 정비되지 않은 채 방치된 느낌이 강했다. 고백컨데 김영하의 책을 읽기 전 시칠리아는 이런 남부 이탈리아 이미지에 마피아와 범죄가 덧붙여진 더 위험하고 더 무질서한 곳이었다.

 

김영하의 책을 읽고서야 시칠리아가 과거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그리스 문명이 교차하며 큰 번영을 이뤘으며, 지금도 그리스식 연극이 교육되고 공연되는 몇 안 되는 곳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아그리젠토에는 로마나 아테네 못지않은 규모의 신전과 유적이 가득하다. 아직도 위용을 자랑하는 콘코르디아 신전은 그 대표격이기도 하다. 아테네와 로마의 비싼 물가를 피해 시칠리아로 고대 그리스 여행을 떠나볼까 싶기도 했다.

 

여행기란 목적지를 찾아가며 겪는 험난한 여정과 고생, 그리고 목적지의 이런저런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그 심층에는 여행 전후의 삶의 변화가 깔려 있다. 시칠리아를 떠나는 페리 뱃머리에서 김영하의 아내는 말한다. '난 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이 여행 이후 김영하는 북미로 부산으로 다시 서울로 어쩌면 노마드처럼 여기저기 삶의 터전을 옮기며 살고 있다.

 

2021년 10월 10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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