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끔 여기 학교에서 논의하는 것 보다 보면 한국인으로서는 잘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있음. 예를 들어 요즘 딸아이 학교에서 논의하고 있는 게 학년이 올라갈 때 애들 반을 섞을지 말지에 관한 것임. 애 학교는 학급당 대략 30명씩인 두 학급으로 한 학년이 이뤄져 있음. 그런데 이번 9월 새 학년이 시작될 때 그 두 학급의 학생 반반씩을 섞어서 새롭게 두 학급을 구성하겠다는 것. 한국에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학생들 섞어서 이렇게 하는 것인데, 여기서는 이런 정책을 시행할 지를 고민 중이니 의견을 개진해 달라는 교장 선생님의 메일이 전체 학부모들에게 우선 보내졌음. 그리고 의견 개진 기간이 끝난 뒤에는 그러한 의견을 모아 별도의 파일로 정리해서 다시 학부모들에게 보내옴.(대충 학부모 내용을 보니 별의별 내용들이 다 있음. 우리애 이제 친구들 만들어서 잘 적응했는데 친구랑 다른 반이 되면 또 적응하느라 너무 힘이 들 것 같다는 둥, 우리 애는 특정 애랑 같이 있을 때만 공부를 잘하는데 섞으면 안 된다는 둥...) 나나 아내나 애들이 학년 올라가면 당연히 학급 친구들 바뀌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여기는 학년마다 의견을 듣고 판단을 조금씩 다르게 하는 모양. 여하간 이렇게 여러 학부모들의 의견과 선생님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반을 섞을 학년과 그렇지 않을 학년을 결정할 모양. 그리고 반을 섞기로 한 학년 같은 경우는 설문지를 돌려서 반드시 같이 있었으면 하는 친구들의 이름을 적게 하고 그 중 최소 2명은 반드시 다시 같이 한 반에 있도록 하겠다고 함.(원래 학급 친구의 반은 어찌 됐든 다시 만나는데도.) 그리고 모든 이를 만족하게 할 수는 없으나 그래도 가능한 한 노력해서 교육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는 시도라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함.


<학교에서 보내 온 '학급 섞기'와 관련된 내용 중 일부. 부모들의 우려와 질문들을 3페이지 가량으로 정리하여 보내왔다.>



2. 그럼 딸아이 학년은 새 학년이 시작될 때 반을 섞을 것이냐? 내가 봤을 때 메일 내용에서 전해지는 분위기가 딸아이 학년은 새 학년 시작할 때 반을 섞을 것 같음. 그리고 3학년도 반을 섞을 것 같음. 3학년의 한 반은 이번 학기가 끝나면 30명 중 무려 21명이 다른 곳으로 전학 가거나 혹은 고국으로 돌아간다고. 왜냐면 케임브리지 대학 학기도 함께 끝나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이 학교 학군에 케임브리지 대학교 기혼자 숙소가 있어서 부모가 대학에서 공부하거나 혹은 연구하는 애들이 꽤 많음. 그래서 한 학년이 끝나고 시작할 때마다 학생들 이동이 상당함. 사실 딸아이 등하교때 들어보면 세계 각국의 언어는 거의 다 듣는 것 같음. 불어는 기본이고 독어, 폴란드어, 스페인어, 인도어,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 등등(가끔 티벳어가 아닐까 의심되는 말도 듣고 있음 ㅎ) 국제학교 아닌 국제학교라는. 오죽하면 학교 행사 때 자기 나라 음식 만들기 같은 행사가 있음. 여하간 다음 학기에 애들이 등교 안 할 경우 빨리 학교로 알려 달라고 메일이 옴.



3. 여하간 뭔가 정책을 시행할 때 저렇게 이해당사자들한테 내용을 꼭 알리고 의견을 듣고 또 가능하면 그런 의견을 반영하려는 저런 노력이 어찌보면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본이 아닐까 싶더라는. 요즘 우리 동네의 이슈 중의 하나는 통과차량들이 너무 많이 다녀서 시끄럽고 위험하니 뭔가 대책을 세우자는 것임. 사실 이곳은 전형적인 주택가이고 이면도로여서 내 기준으로 봤을 때 그렇게 차가 많은 곳은 아님. 근데, 여기 사람들은 여하간 차들이 많이 다닌다고 이미 동네 입구의 도로 반을 화단으로 만들어 버리고 편도 1차로에다가 차높이의 쇠기둥을 2m 폭으로 세워놨음. 이게 얼마나 좁냐면 중형차로 여기 통과할 때 아주 모골이 송연함. 한국처럼 버튼으로 사이드 미러 접는 기능도 없는 차들이 대부분이라 사이드 미러가 이 쇠기둥에 부딪힐 것 같은 공포가 상당함. 차들이 속도를 낼래야 낼 수도 없음. 그리고 거의 20m마다 다시 험프까지 설치되어 있음. 이런데도 성이 안 차서 계속 시에 청원하고 의견 수렴하고 그러고 있음. 가끔 개진된 의견들 정리해서 배포한 것(의견을 누가 수렴하며 어떻게 의견을 보내면 되는지 언제 동네 교회에서 다음 모임을 하는지, 시의 입장은 무엇인지 등등이 잘 나와 있음)들 보면 진짜 재밌는 주장들 많음. 이 동네로 들어오는 모든 도로 입구를 폐쇄하고 현재 도로는 녹지로 바꾸자는 극단적인 주장부터 라이징 볼라드(허가된 차량이 접근할 때만 볼라드가 땅밑으로 내려가서 차량이 통과할 수 있도록 해주는)를 설치하자는 주장, 네비게이션 업체에 연락해서 네비게이션에서 이 도로를 없애버리자는 주장 등등. 근데, 인상적인 것은 황당한 주장이라고 한국처럼 무조건 무시 당하지 않음. 그런 주장 하나하나를 다 리스트업해 주고 그런 주장에 대해 전문가, 시청의 의견을 함께 제시해 줌. 보다보면 결론이 어떻게 나더라도 나의 의견이 무시당하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반영이 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것 같음. 그리고 이런 구절을 자주 보게 됨.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안은 없을 것이며, 아마도 적절한 선에서 우리는 타협해야 할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우리동네 입구 도로의 모습>


2014년 5월 28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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