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은 다른 이름으로 불려도 똑같이 향기롭다
1. 열심히 사시는 분들 보면 부럽다. 오늘 저녁 강남에서 오랜만에 뵌 분한테 양자 컴퓨팅의 중요성에 대해 거의 3시간 내내 강의를 들었다. 나 보고도 이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라시고. 근데, 내가 그분 나이면 그냥 맨날 놀러 다닐 것 같다.
2. 우연치고는 놀랍게도 강남 가는 전철에서 읽었던 게 맥스 테그마크의 '유니버스' 중 미시세계에 관한 부분이었다. 양자 세계의 기묘함과 코펜하겐 해석, 그리고 휴 에버렛의 주장에 대해 주로 읽었다.
3. 휴 에버렛은 전통적인 코펜하겐 해석과 달리 파동함수는 절대 붕괴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다. 우리 우주를 구성하는 입자들은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하지만 관찰에 따라 파동함수가 붕괴하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여러 평행우주로 나뉠 뿐이라는 뜻이다.
4. 휴 에버렛은 이런 급진적인 주장을 1957년 프린스턴 대학원생 시절에 제기했지만 주류 물리학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술과 담배에 몸을 상한 끝에 1982년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5. 불운한 삶을 살았던 휴 에버렛의 딸은 아버지가 주장했던 평행우주에서 아빠를 다시 만나겠다는 쪽지를 남기고 자살했다. 휴 에버렛의 가족 중 이제 남은 이는 그의 아들 마크뿐이다. 마크는 록 가수이며 영화 슈렉의 주제가를 부를 정도로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아래 유투브 링크처럼 단편적이다.
6. 평행우주는 무수한 삶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휴 에버렛이 노벨상을 받고 명문대 교수가 되고 그의 자식들과 가족이 남부럽지 않은 행복한 삶을 사는 또 다른 세상이 어디엔가 존재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번 생은 천기를 누설한 그에 대한 징벌이었을지도 모를 일이고.
7. 이름이 무슨 소용인가? 장미꽃은 다른 이름으로 불려도 똑같이 향기로운데...
2019년 6월 14일
신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