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한탕과 한방, 거품과 혁신 사이

뚜와띠엔 2026. 1. 9. 12:05

 

 

 

몇 년 전 일이다. VC 업계에 종사하는 지인과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지인이 갑자기 어떤 기업에 관해 내게 물었다. 유사한 분야 아니냐며. 직접적으로 아는 회사는 아니었지만 한 다리 건너 아는 회사였고, 또 당시 여기저기 자주 언급되던 회사기도 했다. 지인은 그 회사의 기술에 관해 의견을 물었다. 솔직히 답했다. 창업한 지 얼마 안 된 회사인데 동영상 이상의 실체적 기술과 직접 구현된 시스템을 보여준 적이 없으며, 그 회사 홈페이지를 둘러봤지만 정확히 핵심 기술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왜 그러냐고 물으니 겸연쩍게 답한다. 그 회사에 여러 펀드가 투자했는데 지금 다들 속았다고 생각한다고. 독자적 개발 기술인 줄 알았더니 미국의 기술을 가져다 껍데기만 바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말이다.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으니, "뭐 코스닥 가야죠. 대안이 없습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회사는 기술특례로 코스닥에 입성했고, 그리고 상장 후 얼마 되지 않아 미래투자를 위해 자금이 필요하다며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현재 주가는 상장 직후 최고가를 찍은 뒤 계속 미끄러져 최고가의 거의 1/7 수준이다. 


작년 연말에 뵀던 교수님 한 분은 기술특례 상장을 노리는 어떤 기업의 기술성 평가에 참여하셨다. 뻔한 사업 모델과 그닥 새롭지 않은 기술을 들고 어떤 업체가 코스닥 입성을 준비 중인 모양이었다. 교수님이 내게 물으셨다. "OOOO 같은 게 돈이 될까요?" "아니요. 이미 레드오션도 그런 레드오션이 없습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AI 기반 XXXX 기술도 새롭지가 않아 보이던데 어떻게 생각해요?" "오픈소스도 워낙 많아서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가 중요하겠지요." "그게 문제지요." "그래서 교수님은 어떤 의견을 표명하셨어요?" "아, 그건 노코멘트. 근데 이미 시리즈 C까지 투자한 상황이라 투자자들도 다들 물려있다고 하더라구요. 막다른 골목이죠. 운영자금도 고갈되고 있고." 대화는 뭐 이렇게 끝났다.


복잡한 좌표 대신 단 세 단어로 전 세계 어디든 그 위치를 알려줄 수 있다며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던 영국 스타트업 What3Words 사례도 흥미롭다. 2013년에 창업한 이 기업은 2024년에  40억 원가량의 매출을 내고, 200억 원가량의 적자를 기록했다. 창업 이후만 따지자면 지난 12년 동안 2,800억 원의 순손실을 봤는데, 놀랍게도 그 동안 3,100억원 정도의 투자를 유치했다. 단 한 번도 흑자 전환을 이루지 못하고 매년 대규모 적자를 냈지만, 작년에도 이 기업은 150억 원가량의 투자를 받았다. 자금이 물리면 어떻게든 살려서 엑싯을 해야 하는 운명은 한국이나 영국이나 같은 모양이다. 


투자 많이 받은 어떤 스타트업을 방문했던 경험이다. 서울 중심가 건물 한 층을 통으로 임대해 인테리어를 참 잘해 놨더라. 무슨 구글에 왔나 싶었다. 미팅하다 은근슬쩍 물어봤다. "와, 인테리어가 참 멋지네요!" 대표가 답하더라. "벤처는 원래 돈 쓰는 곳이죠." 그렇구나. 그때 생각이 난다. "이게 자기 돈이면 이렇게 꾸몄을까? 미국에서는 창고와 차고에서 스타트업을 시작하는데 한국의 스타트업은 강남이나 판교 최상급지에서 시작하는구나."했던. 난 내가 창업자이자 오너여서 그런지 회사 돈 10원 쓰는 것도 벌벌 떨린다. 


어찌 보면 거품으로 보이는 이런 행태가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William Quinn과 John Turner의 책 [Boom and Bust]에 따르면 거품 또한 긍정적 측면을 가진다. 우선, 혁신을 촉진하고 기업가 정신을 자극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미래 경제 성장에 기여하도록 한다. 둘째, 거품으로 인해 탄생한 기업들이 개발한 신기술이 다른 산업 분야까지 영향을 미치며 산업 전반의 혁신을 촉진할 수 있다. 셋째, 과거에는 자금을 조달할 수 없었던 기술 프로젝트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다만, 이런 '거품'의 긍정적 측면이 앞서 언급한 사례에 적용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실리콘밸리의 격언 'Fake it till you make it'에서 Fake와 Make는 딱 한 글자 차이다. 우리말로 하면 '한탕'과 '한방' 정도의 간극이다. 이 둘의 경계는 흐릿하지만, 거품이 꺼진 뒤 남겨진 욕망의 흔적은 선명하다. 자본의 논리가 혁신의 본질을 삼켜버린 시대, 우리가 쫓는 것은 'Make'인지 아니면 정교한 'Fake'인지 묻게 된다. 잊지 말자.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중력을 거스를 수는 없다.

 

2026년 1월 9일
신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