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먹고 강경으로 가 팔괘정 주변을 둘러봤다. 책을 읽다 이중환이 강경 팔괘정에서 택리지를 완성했다는 대목이 나와서다. 강경을 몇 번 가 근대문화거리, 소금문학관, 젓갈시장을 둘러봤지만 유학자들의 공간이 남아있는 줄은 몰랐다. 가서 보니 황산근린공원 주변에 팔괘정, 임리정, 죽림서원이 모여 기호유림의 맥을 잇고 있었다. 


팔괘정은 우암 송시열이 17세기 중반에 지은 정자로 스승 김장생이 먼저 지은 임리정에서 150m 가량 떨어져 있다. 스승에 대한 존경과 흠모가 담긴 정자다. 스승의 정자와 구조도 동일하고 내외부가 모두 검박하다. 두 정자 모두 낮은 언덕 위에 자리잡았지만 굽이치는 금강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금강은 부여부터 남동쪽으로 흐르다 강경에서 논산천, 강경천과 합류하며 남서쪽으로 그 방향을 급하게 틀어 서해로 빠져나간다. 이 방향 전환의 변곡점에 팔괘정과 임리정이 딱 터를 두고 있다. 이런 탓에 두 정자에서는 짙푸르게 뒤척이는 금강을 눈맛시리게 내려다볼 수 있다. 지금은 정자 앞의 건물과 전선과 금강을 가로지르는 교량이 눈을 어지럽히지만 조선시대 때는 가히 천하일경 중 하나였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팔괘정에서 조금만 걸으면 등대 모양의 강경 전망대에 닿는다. 전망대를 걸어올라 꼭대기에서 강경 주변을 둘러보면 왜 강경이 일제시대까지 그 위세가 대단했는지 단박에 이해가 된다. 천혜의 축복 받은 땅이다. 뒤로는 드넓은 평야가 자리잡아 농산물이 풍부했고, 앞으로는 서해를 통해 각종 물자와 사람이 오갔다. 내륙항이자 교통의 요지로 물자와 사람이 오가니 번성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었을 터이다. 1929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의 시장경제>는 강경을 조선의 3대 시장이라고 기록했다. 


내 고향도 아닌데 강경에 가면 묘하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포근해진다. 오늘도 뙤약볕을 뚫고 기호유림 문화지구를 넘어 여기저기 전에 안 가 본 곳들을 싸돌아다녔다. 강경 곳곳에는 항일운동의 흔적이 가득하다. 그저 장사치의 도시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금강 같은 도도한 선비 정신이 살아 있는 도시다. 스승의 날 발상지도 강경이다. 옥녀봉 초입에 다른 무엇도 아닌 문학관을 지은 이유일 게다.

 

 

2024년 9월 14일
신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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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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