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의 추억

낙서장 2021. 2. 21. 12:19

1. 대학 시절 익산에 자주 갔다. 방학 때면 익산시 삼기면으로 민요 전수 받으러 다녔다. 오룡리 검지마을에 전수회관이 있어서 거기서 1주일 이상 숙식하며 이제는 돌아가신 박갑근 할아버지께 농부가며 등짐노래며 선화공주며 노래를 배웠다. 할아버지는 외모나 품성이나 푸근하시면서도 따뜻함이 가득한 분이셨다.

 

2. 할아버지께 주로 노동요를 배웠지만 인상적이었던 노래는 '선화공주'였다. 가사는 이렇다. "선화공주 선화공주 우리 공주 선화 공주. 시집일랑 아니가고 밤이면 또 밤마다 서동 방안 찾아가서 안고 굴며 논다네. 서동이여 서동이여 어서어서 어서 오소. 염통일랑 하나인데 염통 반쪽 떼어다가 공주님께 바쳤다네."(기억에 의존하는 거라 틀릴 수 있다.) 음 진행도 굉장히 독특하다.

 

3. 박갑근 할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이 노래가 옛 기록에 전하는 서동요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익산 미륵사 창건신화는 선화공주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다. 서동과 결혼하여 나중에 무왕비가 된 선화공주가 미륵삼존을 만나고서 무왕(서동)한테 부탁하여 지은 절이 미륵사다.

 

4. 할아버지께 노래를 배우다가 중간중간 미륵사 이야기도 듣고 왕궁리 이야기도 듣고 그랬다. 익산에 미륵사지 뿐만 아니라 왕궁리도 있고 설화가 깃든 다른 여러 백제 문화 유적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게 되었다. 미륵사지가 노래 배우던 오룡리에서 가까운 거리여서 한 번 가야지 했는데 직업도 없던 대학 시절에 뭐가 그리 바빴는지 결국 가지 못 했고 30년 가까이 지난 오늘에야 다녀왔다.

 

5. 대학 고학년이 되어 더이상 노래를 배우러 가지는 않았지만 노래 배우는 후배들 응원한다며 짧게 익산을 다녀왔던 기억도 있다. 후배 한 녀석과 서울에서 출발해 버스를 갈아타고 익산 삼기면에 내려 요기를 하러 어느 식당에 들어갔다. 김치찌개 2인분을 시켰는데 반찬이 24가지인가 깔려 나왔다. 음식도 맛있고 양도 많아 자취생활 오랜만에 마음껏 즐겼지만 식당벽에 가격표가 없어 둘 다 가격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다. 한정식급의 식사여서 1인분에 만원은 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 사장님께 가격을 물으니 6,000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안도하는 심정으로 그러면 그렇지 이렇게 맛있고 양 많은 음식이면 이 정도 가격은 해야지 하면서 12,000원을 내려하니 사장님께서 2인분 합쳐서 6,000원이라고 하신다. 아, 그때의 기쁨과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심지어 사장님께 부탁 드리니 남은 반찬을 죄다 싸 주셔서 후배들에게 가져다 줬다.

 

6. 옛 기억처럼 익산분들은 그곳의 자연과 닮았다. 나지막하고 둥글둥글한 산과 안온한 기운마냥 언제나 따뜻하고 편안하게 사람을 대한다. 아래 링크는 김명곤 전 문화부 장관께서 쓰셨던 박갑근 할아버지 이야기다. 다음에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으로 알려진 익산 쌍능과 왕궁리 유적을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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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따라 사라지는 흙의 노래, 박갑근 명인

전라북도 익산군은 부여 지방과 함께 마한·백제 문화의 중심지였던 곳입니다. 기름진 황톳빛 땅과 나지막한 구릉들이 알맞게 조화를 이루어 사람 살기 딱 좋은 곳이라는 느낌을 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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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20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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