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낙서장 2026. 9. 8. 00:06

가을. 책 읽기 좋은 때다. 아내가 도서관을 가자고 한다. 나는 고창 황윤석 도서관을 가면 어떻겠냐고 이야기했다. 작년 말에 개관한 곳인데 표절 시비가 있지만 아름답다고 소문난 도서관이라며. 아내는 가까운 곳에 가잔다. 오창호수도서관에 갔다.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언제나 푸근하다. 싸움과 소음으로 소란스럽기만 한 바깥세상과 달리 도서관은 보이지 않는 장벽을 친 듯 조용하고 다들 자신만의 공부에 열심이다. 책 냄새 가득한 서가를 걸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인류사의 온갖 영웅과 위인과 천재와 작가와 여행기가 말을 걸어온다. 


낯선 도시나 고장을 가면 도서관에 들르곤 하는데 다문화도서를 갖춘 곳이 많아졌다. 도서관 또한 우리 사회의 변화를 반영한다. 케임브리지에 살 때 시내 나가면 중심가 한복판에 자리잡은 케임브리지 중앙도서관에 딸과 함께 들르곤 했다. 케임브리지 중앙도서관은 케임브리지에서 가장 비싼 몰인 라이온 야드 2층과 3층의 꽤 큰 공간을 차지한다. 2층 서가 맨 끝에 다양한 언어의 책들이 꽂혀 있는데 한국어 책도 제법 됐다. 주로 어린이 책이었다. 


20~30대 때 도서관이나 서점에 들르면 해외여행 책을 들춰봤는데 이제 그 설렘이 많이 사라졌다. 오늘도 여행 책 코너를 훑어보며 '그래 저기는 가봤지 그랬지' 하고 말았다. 나이가 드니 설렘도 기쁨도 슬픔도 바래는구나 씁쓸했다. 근데, 왜 화와 분노는 사라지지 않고 더 증폭되는지 모를 일이다. 


갈수록 무덤덤해지는 50대 중년 남자에게 도서관과 서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책점(冊占) 보기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책점은 문자 그대로 책으로 점을 치는 행위다. 나는 어렵고 힘든 일을 겪을 때 엉뚱한 책을 읽다 위안을 얻거나 해결책을 생각해 내곤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게 책점이었다. 도서관이나 서점 서가를 걷다 눈에 들어오는 아무 책이나 빼서 아무 페이지나 읽다 보면 마치 신탁처럼 답을 얻곤 한다. 오늘 책점은 "나는 내 감정에 대해 말할 권리가 있어."다. 


건축적으로도 아름답고 내부 공간 구성도 세련된 지방 도서관이 많아졌다. 구례군 매천도서관, 논산시 열린도서관, 사천시 시립도서관, 세종시 시립도서관 등. 아내와 지방 도서관을 답사하며 여행하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도서관은 건물이 주인이 아니라 책과 사람이 주인이어야 한다. 가끔 주객이 바뀐 도서관을 보면 안타깝다. 오늘 다녀온 오창호수도서관도 그런 사례다.

 

 

 

2026년 9월 6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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