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페북에서 '보수는 타고난 본능이고 진보는 학습된 이성'이라는 구절을 보았다. 그 구절을 읽다가 오픈 소스와 독점 소프트웨어에 빗대어 문득 재미난 생각이 들어 기록해 본다.
2.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가 왜 혁신적인가에 대해 아티클을 찾아본다면 아마 경제학적, 사회학적, 기술적 분석을 수행한 수십편 혹은 수백편의 논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논문들을 읽다 보면 대부분 공유, 개방, 집단적 협력을 통한 네트워크 효과, 피어 리뷰(Peer Review) 등과 같은 단어를 수십 차례 만날 것이고, 여기에 더해 복잡한 소프트웨어 개발 모델에 대한 설명을 여러 번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오픈 소스 개발 모델이 왜 혁신적인지를 자신의 언어로 남에게 설명하려면 나름 꽤나 공부해야 한다. 한마디로 딱 정리해서 말하기가 그리 쉬운 편이 아니다. 공부가 제법 필요하다. 그리고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는 사실 최종 사용자에게 그리 친절한 소프트웨어가 아니다. 어쩌면 개발자에 의한 개발자를 위한 개발자의 소프트웨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독점 소프트웨어에 비해 문서화도 많이 부족한 편이고, 지원 자체도 그리 체계화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의 개발 방식은 혁신적일지는 모르지만 최종 사용자에게는 불친절하고 불편한 소프트웨어다.
좋은 것 같기는 한데..
3. 그런데, 상업적 독점 소프트웨어가 왜 혁신적인가에 대해서는 별다른 글들이 없다. 실제로 독점 소프트웨어의 혁신성을 다룬 논문 찾아보면 찾기 쉽지 않다. 그래도 끝까지 찾아보면 가끔 소프트웨어가 독과점을 이루는 현상에 대한 분석과 함께 동태적 효율성(Dynamic Efficiency)를 다룬 것들 정도가 걸릴 것이다. 왜냐면, 상업적 독점 소프트웨어의 혁신성은 어떤 복잡함에 있지 않고, 바로 '돈'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구구절절 이 모델이 혁신적이네 어쩌네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냥 소프트웨어 잘 만들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게 명확하다. 이 혁신 모델은 말 그대로 현대 자본주의의 '타고난 본능'에 가장 충실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독점 소프트웨어 제작 회사들은 고객들에게 무척이나 살갑게 대하는데 이는 사실 고객이 자신들의 '돈줄'이기 때문이다. 전형적으로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고 그리고 돈줄에 충실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능은 별다른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4. 1980년 이후 어찌보면 자본주의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에 충실한 독점 소프트웨어가 소프트웨어 산업을 지배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러한 흐름은 여러분도 아시는 바와 같이 참 많이 바뀌고 있다. 이런 변화를 가장 잘 대변하는 사례가 아마도 마이크로소프트(독점소프트웨어의 대표주자)와 래드햇(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대표주자)의 최근 주가 추세일 것이다. 2012년 12월 20일자 주가 현황을 보니,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식이 27.41달러에 나스닥에서 거래되고 있는데 반해, 래드햇은 52.32 달러에 미국 뉴욕 증권시장에서 거래되고 있었다. 오픈 소스 운영체제 공급 회사의 주가가 세계 제1의 독점 운영체제 공급회사 주가의 거의 두 배에 육박한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꽤 많다.(2000년대 초반에 대표적인 IT 거품주로 꼽혔던 것이 래드햇이었다는 점을 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지난 5년 간 마이크로소프트와 래드햇의 주가 추이. 붉은선이 래드햇, 파란선이 마이크로소프트>
이런 변화를 그저 사회상이나 경제상의 변화로만 이해하기도 쉬운데, 사실 오픈 소스 진영의 치열한 노력 또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래드햇이나 펜타호처럼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로 성공한 기업들의 CEO들이 대부분 독점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성장한 뒤 오픈 소스 기업으로 이직했다는 사실 또한 흥미롭다. 이들은 자신들이 제공하는 소프트웨어가 '오픈 소스'인지 '독점 소프트웨어'인지에 대해 집중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객에게 어떤 더 우월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가에 집중했고 이런 점에서 이들은 성공했다. 즉, 고객의 입장에서는 소프트웨어가 오픈 소스이든 독점 소프트웨어이든 자신의 문제를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해결해 주기만을 바란다는 점에 집중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쥐를 잡는다면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무슨 상관이냐는 접근과 나란하다.
5. 돌아보면 진보이든 보수인든 모두 우리 시민들 잘 살게 하겠다고 노력하는 진영들일 것이다. 시민들도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만 한다면 그게 진보이든 보수이든 무슨 신경을 쓰겠는가? 소프트웨어가 다시 '고객' 중심으로 돌아가듯이 정치 또한 다시 '시민' 중심으로 돌아가야할 시점인 듯하다.
2012년 12월 22일
신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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