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금 디지털트윈은 어디쯤 왔을까? 2018년을 마지막으로 디지털트윈은 가트너의 하이프 곡선에 더 이상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있다. 2018년 자료를 보면 디지털트윈은 '기대의 정점'에 자리 잡고 있고, 5~1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안정적 생산성'의 시기에 접어든다고 예측되어 있다.


2. 새로운 기술의 사회적 수용성을 예측할 때 가트너 하이프 곡선을 많이 인용하지만, 이 곡선이 '더닝-크루거 효과'를 차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더닝-크루거 효과를 쉽게 이야기하자면 '무식하면 용감하고, 벼는 익을수록 머리를 숙인다'다. 


3. 지인 교수께서는 더닝-크루거 효과를 다음과 같이 비유하셨다. "학부 졸업하면 그 전공에 모르는 게 없다가 석사 마치면 아는 게 하다도 없구나를 깨달은 뒤 박사 하면 남들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교수가 되면 나라도 우겨야지 하게 된다."


4. 그래서 지금 디지털트윈은 어디쯤인 걸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가트너 하이프 곡선의 '기술적 환멸 시기' 혹은 학교로 치자면 석사 말기쯤에 있지 않나 싶다. 멋있고 전망도 밝아 보여 많은 기대를 가지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데 생각보다 성과는 안 나오고 여기저기 비판과 회의적 시각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그런 시기 말이다. 이 시기에는 더 노력하면 뭔가 돌파구가 보일 것 같은데 몸과 맘도 지쳐 다 때려치우고 싶고 다른 분야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많은 이들이 떨어져 나간다. 


5.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남의 발자취를 따라 여기까지 왔지만 이제는 온전히 나만의 길을 가야 하는 어렵고 힘든 시기 앞에 홀로 섰다는 의미다. 고된 축적의 시간이다. 아무도 가 보지 않은 길이기에 이게 맞는 길인지 아닌지 확신도 없다. 다만, 주변을 둘러보니 나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상황이라는 점이 작은 안도감을 줄 뿐이다.

 
6. 과거를 돌아보며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길을 간다는 점에서 이건 전통을 어떻게 현대에 새롭게 계승할까의 문제와도 유사하다. 일제 강점기 미술사학자셨던 우현 고유섭 선생은 여기에 커다란 가르침을 주셨다. 

"전통이란 결코 손에서 손으로 손쉽게 넘어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피로써 피를 씻는 악전고투를 치러 피로써 얻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얻으려는 사람이 고심참담(苦心慘憺)·쇄신분골(碎身粉骨)하여 죽음으로써, 피로써 생명으로써 얻으려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7. 며칠 전 모 정부부처 주요 보직에 계신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현재 우리나라 디지털트윈의 기술적 수준과 전망, 더불어 메타버스와의 관계 등에 관해 물으셨다. 한 질문이 맘에 좀 걸렸다. 이제 디지털트윈은 한물가고 메타버스의 시대가 도래한 게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내가 드릴 수 있는 답이란 앞서 언급한 그런 내용 정도였다. 이런저런 악전고투를 치르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이 길이 맞는 길인지 어떤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하지만, 이렇게라도 누군가 나아가지 않으면 결국 길도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8. 어쩌면 한국 공간정보업계가 역사상 처음으로 First Mover로서 자기 역할을 힘겹게 하고 있는 게 이 디지털트윈 분야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껍데기는 가고 알맹이만 남았다. 회의와 불신 속에서도 꾸역꾸역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는 모든 분께 행운과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길이 뭐 별건가? 이래저래 자꾸 다니다 보면 그게 길이지.

 

 

2022년 8월 18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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