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살았던 동네를 다녀왔다. 영국 주택가가 그렇듯 겉으로는 변한 게 없어 보였다. 나무들이 더 크고 우거졌지만 길 양쪽으로 늘어선 주택과 길가에 세워진 소형차들은 여전했다. 산책 겸해서 동네를 걸으면서야 이 동네 분위기가 제법 바뀌었구나 싶었다.

몇 집 건너 사시던 할머니는 돌아가신 것 같았다. 아니면, 아프셔서 활동을 못 하시거나 그것도 아니면 이사하셨거나. 애 등교길에 자주 마주쳐서 친하게 지냈던 분이셨다. 작은 키에 흰머리인 이분에게서는 온화한 미소와 함께 격조, 친절이 느껴졌다. 아침 산책길에는 베스라는 개를 데리고 다니셨고, 낮에는 each라는 구호단체에서 자원봉사하셨다. 항상 가꾸던 그분 정원이 옛 모습이 아니기에 무슨 일이 생겼구나 직감했다.

자세히 보니 동네는 전체적으로 어수선해진 느낌이었다. 관리가 제대로 안 된 정원도 보였고, 아예 정원을 없애고 주차장으로 바꾼 집도 보였다. 지붕을 보니 임대를 주목적으로 하는 집도 더 많아진 것 같았다. 영국은 비가 많이 와 지붕에 이끼가 많이 낀다. 집주인이 살면 지붕 관리를 잘 하지만, 임대용 집들은 보통 문제가 심각해 질 때까지 지붕 관리를 거의 안 하는 편이다. 지붕에 이끼가 많고 기와 색이 어두우면 이 동네에서는 대충 임대용 주택으로 보면 된다. 그 중에서도 우리 가족이 살았던 집은 여전히 극강의 어두운 기와색을 자랑하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며 여기 살던 원주민이 떠나거나 죽고 주요 구성원이 바뀌었겠구나 싶기도 하다. 자녀에게 집을 물려줬을 수도 있고, 아니면 팔거나 임대 전용으로 내놓은 뒤 다른 곳으로 이사한 경우도 많았을 것이고. 과거에는 누군가의 내 동네였겠지만 이제는 다른 이들의 내 동네가 된 것이다. 왔다 가는 사람들과 달리 수십 년 넘게 이 동네를 지키고 있는 나무들이야말로 이 동네의 진정한 주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이 동네 고양이는 왜 예전부터 내가 아닌 딸에게만 다가가는 걸까?

 

 

2023년 8월 27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