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행 단상

Life in UK 2023. 9. 13. 07:34

1. 한국이 순살 아파트로 난리였다면 영국은 강화 경량콘크리트 이슈로 난리였다. Reinforced autoclaved aerated concrete(RAAC)라 불리는 이 콘크리트는 경량화 재료와 강화 재료를 혼합해 만드는데, 콘크리트에 공기 구멍을 넣어 가벼운 무게와 좋은 단열 특성을 자랑한다. 다만, 기존 콘크리트에 비해 내구성이 떨어지고 습기에 특히 취약하다. 습기가 콘크리트로 침투할 경우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이 보이다 갑자기 무너져 내리는 특성을 보인다. 그래서 '가루 콘크리트'로 불리기도 한다. 문제는 이 RAAC를 영국 전역의 학교에 많이 사용한 모양. 영국 교육부가 전수 조사에 들어가고 현재까지 150개가 넘는 학교에 대해 전면 폐쇄를 단행한 모양이다. 야당이나 교육 노조에서는 더 많은 수의 학교가 위험에 처해 있다며 조사 자료 원본 공개를 요구하고 있고, 집권 보수당은 그런 주장은 과도하며 비과학적이라고 맞받아치고 있었다. 

 

 


2. 리버풀에서는 오목한 지형의 도로를 운전하던 차량이 폭우에 불어난 물에 갇혀 운전자 부부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하차도는 아니었지만, 오송 궁평지하차도 참사와 비슷한 사고였다. 과거부터 비슷한 사고가 날뻔했던 곳이었다고 미디어의 보도가 속속 올라오고 시의원은 빠른 진상 조사를 요구했다. 한국과 다른 점은 주요 미디어에서 유족들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그대로 보도하더라는 점. 난 아직도 한국에서 이태원 참사나 오송 지하차도 참사 유가족의 생생한 목소리와 요구를 들은 적이 없다. 

 

 


3. 영국 곳곳에서 삶의 힘겨움이 느껴졌다. 브렉시트 탓인지 코로나 때문인지 아니면 최근의 경기 침체 탓인지는 모르겠다. 케임브리지, 애쉬포드, 심지어 관광도시 캔터베리까지 시내 중심가에 공실이 많았고 여기저기 폐업 알림도 많았다. 특히, 중산층이 주로 이용하는 소매점의 타격이 큰 걸로 보였다. 영국 전역에 400개 점포와 12,500명의 종업원을 둔 Wilko가 파산관리 절차를 밟은 것도 큰 이슈였다. 청산 세일을 하기에 세인즈버리의 반값, 어떤 건 1/3 가격에 물건을 사면서도 맘이 편치 않았다. 중산층을 위한 가게들이 몰락한 곳에 전당포, 1파운드샵, 베팅샵, 할인마트, 귀금속매입가게 등이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영국에서 파운드샵의 폭증과 한국에서 다이소의 약진은 같은 맥락일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최근 이마트 매출 하락이 전적으로 멸치와 콩 사랑 때문일까 싶기도 했고. 

 


예전보다 과학기술과 생산력은 발전했는데 왜 삶은 더 경쟁적이고 불안해진 것일까? 여행이 던진 풀기 어려운 숙제다.

 

2023년 9월 8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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