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솔직히 내 자신 어느 하나 정리된 것이 없다. 가장 개인적인 답을 원했던 대영의 질문에 대해서 나는 아무것도 답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린 폐허 속에서 결국은 또 다른 건설이 시작되어야 한다고만 믿고 있을 뿐이며, 그런 건설의 새로운 시작을 고민하고 있을 뿐이다. 색신의 내가 없어지더라도 법신이라도 남아 조금이라도 후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욕심도 없지는 않으나, 내가 그만한 그릇이야 되겠는가? 대영의 지적대로 "반환경적인 자본주의 체제와 이들이 주도하는 종횡무진의 세계화"야 말로 가장 커다란 이 시대의 병이 아닐까 싶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병을 낳았던 그러한 사상 체계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2. 한반도를 포함한 제3세계로 대표될 수 있는 공간이야말로 서구적가치의 가장 커다란 희생물임에 틀림없지만, 이상스럽게도 지금껏 내가 배웠던 많은 가치와 가르침들이  - 심지어 그 가치와 가르침을 뒤엎는 사상도 - 결국은 모두 그들에게서 왔더라는 사실이야말로 가장 아이러니한 현실이기도 하다. 피해자로서 가장 날카롭게 서구적 가치의 모순성을 비판하고 그 폐쇄성과 모순성을 타격하고 극복했어야만 했을 제3세계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결국은 서구적 가치를 기꺼이 찬양하는 현실에 대한 절망감도 크고 말이다. 음악가 윤이상이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바흐 이후 순정율(A음이 연주고 440hz에 고정된)로 고정되고 화석화된 고전음악계에 한국의 전통음악적 가치 - 특히나 궁중음악 - 를 도입함으로써 새로운 돌파구를 그가 제시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성경의 "나중 가는 자가 먼저 가고, 먼저 가는 자가 나중 간다"는 가르침처럼 우리처럼 나중 가는 자야말로 오히려 먼저가는 자의 잘못된 길을 잘 볼 수 있으리라 믿건만, 우리의 눈과 이상이란 언제나 먼저 가는 자의 발 뒷꿈치에만 머물러 있지 않나 하는 자괴감이 너무나 가슴 아프게 느껴오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나는 주관적으로 믿건데, 이 땅 한반도야말로 - 국수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 새로운 사상체계의 태동에 가장 적합한 곳이라 믿는다. 불교, 유교, 기독교와 같은 거시 담론체계의 잡종교배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주의의 천형을 온 몸으로 받고 있는 땅이기도 하며, 그 만큼의 많은 고통과 피와 울분이 가득한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지구 상에 이런 곳이 어디 있기나 한가?(최근에 황석영도 이와같은 언급을 한 적이 있다.)


3. 나는 현경이 이야기했던 여성성을 하나의 상징체계로 읽었다. 물론 그가 상당한 페미니스트임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그가 제시했던 여성성이란 개념은, - 여성성이라는 개념으로 연대할 수 있는지에 관한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 어찌됐든 주눅들어 있던 나의 영혼에 작은 돌파구를 준 것은 사실이다. 기꺼이 모든 것을 죽여버릴 수 있으며 결국은 다시 살려낼 수 있는 그 용기로서 말이다. 내가 무엇인가를 답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는 사실은 너무나 명확하며, 이제야 기간의 커다란 답답함과 의문을 풀 수 있는 실마리들을 이곳저곳에서 찾은 형국 정도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숭산큰스님의 가르침처럼 "오직 모를뿐"이다. 그곳에 답이 있겠지. 없으면 말고!! 이제야 조금씩 내 인생의 진검승부가 시작되고 있다는 느낌은 든다. 다행스러운 것은, 지금껏 지하철에서 장애자에게 돈 한 푼 건네지 않던 나의 손이, 주머니의 잔돈이나마 주는 손으로 바뀌었다는 것일 게다. 이게 얼마나 커다란 변화인지 말이다. 그렇지만 이 것 빼놓고는 나 사는 것 똑같다. 맨날 화내고, 싸우고, 술 퍼마시고... 오진스님이 그러던데, 사람이 깨달음을 얻는 것은 쉽대. 그것을 항상 유지하는 것이 어렵지.. 커.. 실천의 문제다... 졸라..


술 한 잔 마시고 불콰한 채...


2002년 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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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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