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설 명절에 회사 일이 바빠 어머니를 찾아뵙지 못하고 어제서야 인사 드리고 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께서 훈장님이셨던 할아버지 유품 한 박스와 LP판 한 박스를 가져가라고 내어주신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40년 넘게 유품을 그대로 보관해 놓으셨다. 주로 옛 책들인데 아직 다 확인하지는 못하고 위에 쌓인 몇 권만 들춰봤다. 풍수 책도 보이고 맹자도 보이고 불경도 있다. LP판은 어린 시절 형이랑 동생들이랑 음악 들으려고 샀던 것들이다. 형이랑 같이 샀던 마이클 잭슨 Dangerous 앨범도 있고, 내 인생 최초로 샀던 글렌 메데이로스의 앨범도 보인다. 오후에는 먼지 앉은 앨범 표지 닦고, 무슨 책들이 있는지 꼼꼼히 살펴봐야겠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면 소리소문 없이 조용히 은퇴하도록 한다.

 

 

2. 다시 열심히 일하기로 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없습니다. 대부분 대학, 소학, 맹자, 논어, 중용 같은 사서들이네요. 격몽요결도 있고 풍수책도 있고 문중 책도 있고 단군 이래 조선사를 서술한 책도 있네요. 누군가의 문집을 집대성한 책들도 보이고 무슨 내용인지 짐작도 안 가는 필사본도 보이는데 나중에 시간 내서 AI로 번역해 봐야겠습니다. 시기적으로는 세창서관에서 1952년에 발행한 책이 많네요. 1926년에 발행된 그러니까 100년된 책도 한 권 찾았는데 얼마나 가치 있는 책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책 뒷면에 복제불허라고 인쇄해 놨는데 국회도서관에서 지금 스캔본 무료로 볼 수 있어요. ㅎ 책 들춰보다가 아버지께서 할아버지께 보내신 편지도 두 통 발견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신동으로 이름이 드높았는데 젊은 나이에 암으로 돌아가셔서 할아버지 상심이 크셨죠. 겉으로 내색 한 번 안 하시고 언제나 꼿꼿하셨지만 저는 알았죠. 울 할아버지 참 좋은 분이셨어요. 그리워서 눈물이 나네요.

 

 

2025년 2월 16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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