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모여 대화하기 힘든 요즈음 우리 가족의 소통 채널은 단톡방이다. 오늘 애가 단톡방에 엄마아빠와 자신의 생활에 관한 긴 글을 남겼다. 부모님에 대한 감사와 사랑, 힘겹지만 노력하며 살아가는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했다. 말이 어찌나 곱고 생각과 내용이 바른지 우리 애가 이렇게 컸나 나나 아내나 깜짝 놀랐다. 글이 맑고 투명한 새벽 이슬 같았다.
시험 망쳤다고 자신을 학대하기보다는 '이런 내용을 복습하면 실전에서는 잘할 수 있겠구나'는 생각이 들었다는 대목에서는 나를 돌아보기도 했다. 실패를 성공의 반대가 아니라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하기 싫은 일도 해야만 한다면 오히려 더 열심히 하다 보니 재미도 붙더란다. 중학교 때는 공부하기가 그렇게 싫어서 자신은 공부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 왔는데 요즘 공부해 보니 딱히 그렇지도 않다고. 음대 가는 꿈을 접었지만, 여전히 음악에는 열심이라 얼마 전에는 시험 직전인데도 친구와 약속 지키려 콘서트에서 세션맨을 했다.
애 생활은 나나 아내보다 더 규칙적이고 단단하다는 느낌을 준다. 시험 때문에 친구와 약속한 세션맨이나 자신과 약속한 운동을 포기하지 않으며 당황하지 않고 규칙적으로 산다. 재미를 붙인 수학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 한동안 힘들어하기도 했는데 이제 조금씩 본궤도에 오르는 모습도 보인다.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삶이 행복하다 보니 친구들이랑 대화하거나 문자를 할 때도 비속어나 줄임말보다는 또박또박 말하는 게 더 좋아졌다고 한다.
애비 마음이야 압도적으로 공부 잘해서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턱턱 들어갈 정도면 원이 없겠다 싶기도 하지만 그건 그냥 부모의 욕심이다. 나나 아내나 그런 이야기를 입 밖으로 한마디도 내지 않는다. 아이의 삶이니 스스로 알아서 잘하리라 믿고 지켜보는 수밖에. 본격적으로 공부하는데도 그리 스트레스받지 않으며 날마다 운동하고 악기 연주하며 행복한 삶을 산다고 하니 더 바랄 일도 없다. 삶은 정답이 없는 긴 여정이니 남 신경쓰지 말고 하고 싶은 공부, 하고 싶은 일 마음껏하며 행복하게 살라고 했다.
근데, 이 사랑스럽고 예쁘기 그지없는 아이가 언젠가 누군가에게 시집갈 생각을 하니 급 우울해졌다. '폭싹 속았수다'에서 관식이 금명을 바라보는 심정이 이해가 간다.
2025년 3월 30일
신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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