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대학 입학했을 때 유행했던 운동은 단연 족구였다. 학생회관 옆, 강의실 옆 혹은 식당 옆 등 조금이라도 족구를 할 만한 공간이 있으면 어김없이 초록색 테입이나 라카로 족구장 선들이 그려져 있었고, 3명 혹은 4명씩 한 팀을 이룬 일군의 선수(?)들이 강의와는 무관하게(!) 언제나 그곳에서 족구를 하곤 했었다.
2. 이런 학교의 풍경은 한 3~4년이 지나며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는데, 언젠가부터 도서관 옆을 중심으로 소위 우유팩 차기라는 게 서서히 유행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보기에 팩차기는 꽤나 개인적이면서도 합리적이었다. 꼭 6명 이상이 모여 서로 두 팀을 나눠 경기를 할 필요도 없었고, 그저 몇 명이든 같이 둥그렇게 모여 우유팩을 차다가 강의가 있는 이는 떠나고 반대로 강의가 끝난 이는 언제든지 그 게임에 참여하면 되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게임으로의 드나듦이 매우 자유로웠던 묘한 게임이었던 것이다.
3.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에서 시작됐던 우리의 온라인 게시판 문화는 인터넷의 확장과 함께 웹 게시판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했었던 것 같다. 프리챌 커뮤니티나 다음의 카페에 동아리나 동창 혹은 동호회 모임들이 속속들이 둥지를 틀었었고, 이런 카페의 게시판을 통해 친구들이나 동창들의 각종 소식을 전하고, 때로는 얼굴 붉혀가며 정치적인 논쟁들도 서슴없이 해대고 말이다.
4. 그러나 요즘 내가 가는 커뮤니티의 게시판에는 이제 내 친구나 선후배들의 글들이 거의 올라오지 않는다. 거의 한 달에 글 하나 정도나 올라올까말까 정도인데, 그 글 중의 꽤 많은 수도 블로그와 게시판에 크로스 포스팅한 나의 글이다. 많은 선후배와 친구들은 이제 소리소문없이 슬슬 블로그라는 곳으로 이동했다는 사실도 꽤나 나중에야 알았었다. 블로그라는게 참 묘하다. 개인적인 감상과 사생활을 꽤나 상세하게 인터넷에 공개하면서도 익명성이 보장된 채 관심있는 이들끼리는 서로 연결되며, 검색을 통해 바람처럼 왔다가 트랙백이나 댓글을 달고 다시 사라질 수도 있고.. 누구나 방문할 수 있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누구에게도 어떤 책임감이나 부담을 지우지 않는 그런 공간이라는 느낌을 준다.
5. 이제 시대가 마치 숫자가 딱 맞아야 할 수 있던 족구 시대에서 숫자가 불특정하고, 선수(?)의 드나듦이 잦아도 경기가 진행되는 팩차기 시대로 바뀌는 기분이다. 그러면서 묘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밟히는 것도 어찌할 수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 냄새가 그리운 게지...
2007년 1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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