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자전거 타다가 만난 금강대도. 1874년 창도. 계룡산 모임 후 1920년대에 현 위치에 성지 건설. 1934년 조선총독부의 조사에 의하면 당시 신도수가 13,000여명으로 전국적으로 민족종교 중 천도교, 보천교에 이어 세 번째였다고. 1941년에는 일제의 탄압으로 성지가 훼손되고 성도가 구속 및 사망하는 신사사변을 겪음. 유불선의 통합, 후천개벽의 영향 등이 타 민족종교와 유사하게 나타남.

1950년 한국 전쟁 직전에 큰 전쟁이 날 것을 예견하고 신도들에게 경거망동하지 말고 밖으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경계시켰고, 실제 성지가 있던 곳은 한국전쟁의 참화 동안 안전하고 평화롭기만 했다고. 이 대목을 보니 논산에서 주역을 가르치다 뽑은 괘가 전쟁을 의미하자 제자들을 데리고 안면도로 미리 피난 갔던 주역의 대가 야산 이달 이야기도 생각남.(안면도 주역파 이야기) 야산 이달의 넷째 아들이 역사학자로 유명한 이이화 선생.

계룡산 근처는 한국판 주역인 정역을 연구하는 모임도 끈끈하고 확실히 기운이 다르긴 다른 듯. 아, 내가 지금 디지털트윈이니 공간정보니 이런 걸 할 때가 아닌데. 어쩌면 내가 세종으로 내려온 것도 오늘 자전거로 낯선 곳을 돌아본 것도 다 하늘의 뜻이 아닌가 싶도다.

 

2024년 9월 22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