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시골에 살았던 나는 밥때가 되면 그냥 있는 자리에서 밥을 먹었다. 집이면 집에서 먹고, 들녘에서 친구들이랑 놀다가 새참 때면 주변 어르신들이 부르셔서 밥을 주셨다. 친구 집에서 놀다가 때 되면 친구 어머니가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어 놓으셨고. 어른들 사이에서야 반목과 갈등이 없지 않았겠지만 어린 애들이야 그런 거 모르고 그냥 주는대로 밥 먹고 놀고 그랬다. 


다른 집에서 밥 먹다 우리 집과 다른 점을 발견하곤 했다. 반찬 종류가 다르기도 하고 개수가 다르기도 하고 냄새가 다르기도 했다. 무엇보다 다른 집 어르신들은 밥 먹으며 술 마시는 분들이 꽤 많다는 사실을 그때쯤 느꼈다. 우리 집은 반주 문화가 없었지만, 다른 집은 아침이든 점심이든 저녁이든 꽤 많은 소주나 막걸리를 밥과 함께 드셨다. 신기하면서도 어른들이라 그런가 보다 하며 넘겼던 기억이 난다. 


놀기 좋아했던 나는 광주로 이사 오고서도 친구 집에 자주 들락거렸는데 거기는 시골 인심과 좀 달랐다. 광주 친구 집에서는 밥 얻어먹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 대신 친구 집에서는 찬송가나 불경 혹은 '좋은말씀' 같은 걸 자주 들었다. 어떤 친구 집에는 항상 찬송가가 틀어져 있었고, 어떤 친구 집은 목탁 소리와 불경 읽는 소리가 가득했다. 어른들은 이 지루한 노래와 음악을 왜 틀어 놓을까 의아하기만 했다. 


나이 들고서야 그때 어른들이 이해된다. 소셜 미디어에서야 기쁘고 행복한 삶이 가득하지만 내 나이대의 삶이란 버겁고 힘들기만 하다. 그때의 어른들처럼 술이든 종교든 아니면 그 무엇이든 삶을 위로하고 뇌를 속일 만한 뭔가가 필요하더라. 삶이란 원래 힘겹고 내 마음대로 되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제 나이도 들 만큼 들어 충분히 대비했다고 생각하다가도 막상 운명의 역습을 받아보면 아무짝 쓸모없구나 다시 깨닫는다. 


존경받는 지식인인 지인은 부모님이 모두 치매 환자다. 10년 넘는 간병과 병원 생활에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 지 오래다. 책도 쓰고 TV에도 몇 번 출연하며 교육 컨설턴트로 이름을 날리던 어떤 이는 큰병에 걸렸다. 젊은 시절 열심히 공부하고 치열한 삶을 살았던 대가로는 너무 잔인하다. 


어젯밤 오랜만에 친구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오간 대화에서도 건강과 집안의 우환 이야기가 많았다. 나라고 없을까? 내 속 깊은 이야기를 하니 친구들이 놀란다. 나만은 걱정 없이 행복하게만 사는 줄 알았다고. 소셜 미디어의 폐해라고 이야기해 줬다. 누구나 지옥을 걷고 있다. 타인에게 관대하라는 이유다.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모든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항상 희망과 축복이 함께하기를.

 

2025년 10월 15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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