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떤 이가 미국 이민을 가자마자 생물학(광합성) 시험을 보게 되었고 영어를 못하는 그는 답을 한국어로 적어 냈다. 미국 선생님은 동료 선생님과 함께 한국어 사전을 찾아가며 답안을 채점해 줬고 그는 그 시험에서 최고점을 받았다. 이후 그는 이때 자신감을 바탕으로 좋은 대학에 가고 유명 변호사와 작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재미교포가 며칠 전 트위터에 공유한 실제 자신의 경험담이다.


2. 영국 살 때 딸아이 담임 선생님이 기억난다. 영어 한마디 못하는 어린애를 맞으셨던 Mrs. Hope 선생님이시다. 이 선생님은 영어 못 하는 딸을 위해 날마다 따로 둘만의 수업을 진행하셨다. 선생님이 영어책을 읽어 주시고 딸에게 다시 읽게 하는 개인 교습을 몇 달간 진행해 주셨다. 그 때문인지 딸은 영국 도착 몇 달 만에 영국애들 못지않은 영어 성취를 보여줬고, Year 1때부터는 영국애들보다 더 나은 읽기, 쓰기 능력을 보여줬다. 지금도 딸애는 Hope 선생님 이야기를 자주 한다.


3. 내 기억 속의 선생님은 초등학교 3~4학년 때 박문환 선생님이시다. 선생님은 1979년에 전체 동급생이 7명에 불과했던 내 분교로 전근 오셨다. 오시자마자 학업 수준이 형편없다고 느끼셨는지 꽤나 공부를 많이 시키셨다. 그러면서도 책을 많이 읽게 하셨는데 아침에 등교하고서 최소한 30분 이상은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책 읽는 재미를 그때 처음 깨달았다. 학교생활이 예전과 비교해 빡빡했지만 우리는 모두 선생님을 좋아했다. 선생님의 진심이 느껴져서다. 1980년 5월 광주는 전남 담양의 궁벽한 내 고향 땅도 비껴가지 못했다. 선생님은 월요일 아침에 광주에서 오셨다가 토요일에 광주 집으로 돌아가시곤 하셨는데 광주항쟁이 발발하자 버스 편이 끊어지면서 1주일 동안 학교에 오시지 못했다. 나나 내 친구들은 광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어른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면서도 학교에 가지 않으니 그저 신나서 철없이 놀기만 했다. 광주항쟁 1주일만엔가 선생님은 걸어서 학교로 오셨다. 어른들 말을 들으니 군인들 피해 오시느라 선생님이 산길로만 오셨다고 한다. 수십 킬로미터 산길을 걸어오셔서 너무 피곤하셨는지 그날은 종일 주무셨고 그다음 날부터 수업을 다시 시작하셨다. 그리고, 수업을 다시 시작한 날 나나 내 친구들은 선생님께 볼기를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다. 다들 노느라 1주일 전에 내준 숙제를 하나도 안 해서 그랬다. 숙제를 안 해도 손바닥 정도 가볍게 때리시거나 아니면 농담 같은 경고로 마무리하던 평소의 모습과 너무 달랐다. 어린 내게도 선생님의 어떤 비장함이나 한스러움 같은 게 그대로 느껴졌었다.


4. 오늘, 스승의 날이다. 개인적으로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같은 낯뜨거운 말의 성찬을 좋아하지 않는다.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리라 믿는다. 앞서 언급한 세 분의 선생님이 보여준 행동은 어쩌면 그저 직업윤리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 이상임을 안다. 말하지 않아도 따뜻함이 전달되 듯 그분들의 사랑은 조용히 우리를 적신다. 누군가를 가르치시는 모든 분들께 오늘 하루 기쁨과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기원 드린다.


2018년 5월 15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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