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현'을 읽으며 들었던 몇가지 생각을 적어보려 합니다.

그의 글을 읽으며, 그가 제기했던 '일상적 파시즘'이라는 분석틀이 현재 한국사회의 여러 현상들을 분석하는데 매우 유용할 수 있음을 느꼈습니다. 제가 항상 고민해 왔고, 힘들어했던 많은 부분에 대해서 무척이나 날카롭게 지적을 해주어 어떤 묘한 청량감마저 들게하더군요. 임지현교수, 나름대로 글솜씨도 뛰어나 글을 읽으면서도 지루하지도, 어렵게 다가오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제기한,  민중을 전통적인 '민중 신화'로서가 아닌 민중 또한 체제 저항적인 성격과 동시에 체제 내화된 파시즘의 소유자로 파악하는 부분에서는 속으로 박수를 많이 쳤습니다. 아리랑에서 항상 주입되었던 전통적인 '민중 신화'가 나를 무섭게 붙잡고 있었던 모양이죠.

우리 사회에서, 혹은 진보적으로 자처하는 많은 단체에서 일상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무서울 정도의 파시즘과(한총련과 랩퍼 김진표의 예 또는 사실 아리랑 홈커밍데이나 다른 자리 등에서도 등장하는), 제 자신 안에 상주하며 제 자신을 수동화시키며 체제 내로 끌어들이는 그 무서운 동력들에 대해 그가 제기한 문제제기는 너무나 옳고 또 적절하였습니다.

사실 제가 이곳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는 '임지현'이 아닙니다. 그의 문제제기와는 다른 층위의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이런 고민을 들어주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때문이죠. 저는 임지현교수의 글을 읽으며 그가 제기한 많은 문제들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 어떤 두려움같은 것이 들었습니다. 그가 제기한 문제틀은 정교하고 세련되어 있지만, 그 틀이 기반하고 있는 지점은 결국 '해방으로서의 근대성'과 '보편성'이라는 두 단어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지점의 시작은 사실 18세기 중반이후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전 세계 인구의 1/10도 안되는) 유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사실 '근대성'이라는 단어와 '보편성'이라는 단어가 혹은 그 의미체계가 결코 객관적이지도 가치중립적이지도 않다고 봅니다. 그 '근대성'이라는 이름으로 서유럽 내부에서 얻은 진보진영의 성취 못지 않게 그 '근대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서유럽 외부의 수많은 파괴와 학살과 폭력이 요즘은 더 눈에 띄고 있기 때문이죠. '보편성'의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학문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매몰될 수 밖에 없는 이 보편성이라는 이념체계도 사실은 유럽 역사의 산물에 다름아니라고 보인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 보편성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전 세계 학문체계를 질식시키기도 한다는 것이죠. 보편이라... 이상스레 서양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이 부분에 참 집착하더군요.

임지현의 글에서 보이던 '동도서기'에 대한 언급에서 어떤 아슬함을 느꼈습니다. 동도서기가 한국에서는 '한국적 민주주의'로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으로 받아들여짐으로써 외양적 형식적 무늬로서의 민주주의 체계는 갖추어졌지만 내면적인 결로서의 파시즘은 잔존, 확대되어 왔다는 것이죠.

그의 글과 분석틀 중에 우리로부터 온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난 5000년 가까운(사실 이 부분도 미묘한 논쟁지점이지만) 세월을 원시와 전근대와 미명 속에서 살아왔던 것일까요? 솔직하게 톡 까놓고 이야기해봅시다. 요즘 진보진영에서 제기하는 문제틀치고 서양에서 수입해오지 않은 것이 있습니까? 다들 학문 수입 오퍼상이지. 맑스, 엥겔스, 그람시를 거쳐 최근에는 또 누구를 팔아먹고있죠? 푸코인가요? 데리다인가요? 몇년전에 풍미하던 그 많던 문화주의자들은 또 뭘
팔아먹고 살죠? 저는 서양의 분석틀이 유효하다고 인정을 하면서도 그러한 분석틀이라는 것이 그 사회와 역사의 산물이라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얼마 전에 한 여성학자가 건국대에선가 여성학박사학위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이 원래 모 여대에서 박사과정을 했습니다만 그곳에서는 절대 박사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건국대에서 다시 공부를 해서 박사를 받으셨죠. 그 분의 박사논문이라는게 '전통 한국 여성'에 관한 것인가 그랬습니다. 그 분 나름대로 한국의 역사 속에서 여성들의 자발성과 평등성을 고찰했던 논문이라고
하더군요.(어제자 신문에 이 부분이 나왔죠. 18세기까지만 해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조선시대 여성의 지위가 상당했다는.. 우리가 공부를 안하니 한국의 여성들은 다 노예같은 생활을 하며 5000년을 살아왔다는 결론에 도달하는거죠. 아님 그런 결론이 있어야 서양의 틀에 맞든지.. 좀 과격한 비유지만.)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한국적 페미니즘'연구라고나 할까.. 근데, 그 모 여대에서는 그런 페미니즘은 인정을 절대 안했다는군요. 그게 임지현의 표현대로 어떤 패거리 의식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서양적 보편성에서 벗어난 틀에 대해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도 하더라는 것이죠.

긴 이야기를 마무리하자면.. 저는 솔직히 우리 사회의 정체성을 모르겠습니다. TV와 뉴스, 신문에서는 마치 우리가 유럽이나 미국에 사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프로그램과 기사들 일색입니다. (아, 그 천박한 예식장을 보세요..) 무슨 세계여행이나 문명탐험이니 하는 것들도 보면 잘 난 우리가 못난 문명 구경한다는 이런 식이고.. 혹은 그 반대고.. 마치 서구나 미주에 사는 착각을 하며 그네들의 틀과 기술을 가져다가 살고 있지만, 제가 보기에 절대로 우리는 그네들과 같을 수도 없고
같을 필요도 없으며, 같다가 인정해 주지도 않는다는 것이죠. 우리는 '탈아입구'에서 단 한발짝도 나아가 있지 않다고 봅니다. 오리혀 우리의 위치는 제3세계가 아닌가 싶구요. 그런 위치 속에서의 아리랑의 정체성도 규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한국 전통 민요를 공부하며, 서양의 맑스나 엥겔스나, 레닌이나 또 다른 누구를 공부하는 아리랑의 모습도 요즘은 참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마치 양복 정장을 하고서 장구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우리를 변방으로 규정짓고 그 변방으로 시작하는, 진정 우리로부터 시작하는 해방이론은 진정 불가능한가요?


2000년 7월 8일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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