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참 오랫만에 책을 잡아들고 읽어 본 것 같다. 근 3달 만에 다시 책을 잡으려니 사실 두려움마저 들더라. 잘 읽을 수 있을까하는. 뭐 어쩌겠는가? 돈 주고 책을 샀으니 그냥 음악 들으며 이리 뒹굴 저리 뒹굴하며 우겨읽는 수 밖에.
이번에 고른 책은 자칭 우파 자유자의자인 고종석씨의 '자유의 무늬'라는 책이다. 그가 지난 98년 이후 이곳저곳에 투고했던 글들을 갈무리해 하나로 묶어 낸 책이다. 지난 10월엔가 나왔으니, 우연히도 그의 글들이 쓰여진 시기가 김대중정부의 임기하고도 거의 일치하는 셈이다. 따라서 그의 글들에 김대중정부에 있었던 여러 일들에 대한 그의 단상이 잘 나타난다.
고종석은 한겨레신문사 기자 시절부터 눈길을 끌던 글들을 많이 쓰던 사람이어서 남다른 애착이 있는 사람이다. 한 5~6년 전엔가 나왔던 그의 에세이집 '고종석의 유럽통신'이라는 책은 아직도 참 인상깊다. 빡빡한 좌파적 이데올로기에 익숙해 있던 내게, 뭐랄까 일종의 '자유의 공기'같은 색다른 느낌를 줬던 책이라고나 할까? '다양성 혹은 다원성의 인정',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집단주의에 대한 본능적 거부', '순수집착증 혹은 순결집착증에 대한 혐오'와 같은 그의 입장은 내게 '자유주의'라는 단어를 각인시켜 줬으니까.
그의 이번 책은 사실 지난 시절의 그의 글쓰기와 거의 나란한 글쓰기이다. 지난 시절 그가 '유럽통신'에서 보여줬던 입장 혹은 소설 '제망매'에서 드러냈던 관점하고 거의 동일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읽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독하게 이야기하자면 - 그의 나이가 이제 45이니 - 30대까지의 공부로 지난 5년을 울궈먹었다고나 할까? 30대 때까지의 글에서 보여주던 파릇함 때로는 거칠음 같은 것들이 많이 사라진 듯하지만, 그래도 그의 큰 틀은 많이 바뀌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다. 한국처럼 척박한 교육풍토에서 이만한 인문주의자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기적에 가깝다는 '상찬'을 받았던 그인지라 조금은 안타까운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고종석이 아직도 유효한 것은 그나 혹은 유시민같은 우파 자유주의자마자도 '좌파'로 오인받는 한국의 토양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 이 21세기 벽두에 말이다 - '자유'와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이 '불온함'으로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이 어쩌면 고종석이 한 발짝 더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어쩌면, 다르게 생각해서, 내가 그를 읽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 내 위치의 애매함, 그리고 5년 전의 나에 대한 자신없음 등등에 기인해서 말이다. 그럼에도 고종석은 내게 '고종석'이어야 한다. 그것은 그가 백낙청에게 '백낙청'을 기대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고종석, [자유의 무늬], 개마고원, 2002년 10월 출간
2002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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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9일의 덧글 :
내 블로그의 '불순함을 옹호하다' 또한 고종석의 글에서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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