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대회 정식 이름이 '보물섬 남해 자전거 대축전'이다. 이번이 여섯 번째다. 그랑폰도나 메디오폰도와 달리 등수나 기록보다 완주에 초점을 둔 대회다. 남해군에서도 대회 목적의 하나로 남해군 절경 홍보를 꼽았다. 경쟁에 집착하지 말고 쉬엄쉬엄 타며 아름다운 남해 풍광을 즐기라는 것. 


2. 아내에게 이 대회 소식을 전해 듣고 그날 바로 등록했다. 대회 코스도 일반인 25km, 전문가 코스 45km로 무리 없어 보여 일요일 오전을 즐기기에 딱이었다. 대회 홈페이지에서도 해안길만 강조할 뿐 코스의 난이도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이 없었다. 그냥 바다 즐기며 타면 되는가 싶었다. 


3. 대회 출발지에 도착하고서야 뭔가 분위기가 싸함을 느꼈다. MTB를 가져온 참가자가 반 이상이었다. 나이 든 분들이라 MTB를 가져왔나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사회자가 연신 방송을 한다. 이 코스가 올해 처음으로 개설된 코스인데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으니 절대 과속하지 말고 안전하게 라이딩하라고 신신당부한다. 주변을 둘러보니 바다 외에는 다 산이다. 순간 X됐음을 깨달았다. 


4. 출발부터 바로 상당한 오르막이다. 이 오르막만 넘으면 제주도 일주도로 같은 낭랑한 해안 도로가 나올 거라는 부푼 희망을 안고 어찌됐든 발을 굴렸다. 역시 언덕을 넘으니 내리막길이다. 이제야 시작이다 외치며 열심히 달렸더니 바로 또 언덕이 나온다. 그렇다. 여기에는 제주도 해안 도로 같은 평평한 도로 거의 없다. 그냥 언덕 넘으면 또 언덕이고 그 언덕을 넘으면 또 언덕이고 다시 언덕을 넘어 이제 끝이려나 하면 산이 나온다. 


5. 평지 구간은 그리 많지 않고 코스의 대부분이 이렇게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한다. 아니면 고개 넘기다. 장식골 고개에서 너무 힘들어 와리가리로 올라가고 있는데 뒤에서 MTB로 올라오시던 경상도 아저씨가 말을 건넨다. "아재요, 요는 싸이클로 몬 와요. 싸이클로 안 돼요." 아저씨는 빛나는 MTB를 타고 올라가고,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 끌바로 고개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6. 한참을 달리다 다른 고개에서 다시 그 아저씨를 만났다. 이제 그 아저씨도 힘이 부치는지 헉헉거리며 연신 중얼거리신다. "아니, 무신놈의 코스가 이리 오르막이 많노? 오르막에 또 오르막이네." 경사 급한 고개길 지나면서부터는 내가 그 아저씨를 완전히 추월해 앞으로 치고 나왔다. 오늘 확실히 배운 기술 중의 하나가 와리가리다. 


7. 지방에서 이런 대회가 큰 화제는 화제인가 싶었다. 출발해서 돌아올 때까지 지나는 마을마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다 나오셔서 손 흔들어 주시고 응원해 주시고 환영해 주셨다. 그런 환대를 받으니 내가 진짜 무슨 선수나 된냥 더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8. 달리느라 힘들었지만 아름다운 남해 풍광을 놓치지는 않았다.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게 빛나고 이제 가을걷이가 시작된 들녘에서는 트랙터가 벼를 베며 연신 요란한 소리를 냈다. 벚나무가 떨군 갈색 잎이 도로를 뒹굴며 바람에 휘날렸다. 볕이 따가워도 가을은 가을이구나. 


9. 대회는 흠잡을 데 없이 잘 운영됐다. 600명만 참가자로 받았고 거기에 맞게 잘 준비했다. 길목 곳곳에 대회 진행요원들이 배치되어 교통과 안전을 적절히 통제했다. 자기 할 일 하면서도 참가자들 지날 때마다 손 흔들어 주고 힘내라고 응원해 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더운 날 다들 고생하셨다. 


10. 대회 참가비가 3만원이었다. 참가자 전원에게 남해군 지역화폐로 2만5천원을 돌려주셨다. 남해군에서만 쓸 수 있는 화폐이니 이 돈으로 남해군에서 회도 먹고 해산물도 사서 돌아가라는 이야기다. 많은 손님을 맞아 마을도 들썩이고 지역 경제도 살아나고 이런 게 지방 축제의 맛이 아닌가 싶다. 꼭 서울경기권의 대규모 축제나 대회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오늘 코스의 난이도가 상당했다고 아내에게 말했더니 아내가 한마디 툭 던진다. "원래 남해는 산이야."

 

 

 

2024년 9월 29일
신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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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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