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잘 지낸다. 그리고 못 지낸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이 묻곤 한다. 잘 지내냐고. 잘 지낸다고 답한다. 직원들과 태국에 놀러 갔다 왔고,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 함께 여기저기 여행 다닌다고. 하지만 저 심연에서 일렁이는 우울함은 나도 어찌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2. 그날 유투브에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다. 이태원 참사 100일 되던 날 습관적으로 들어갔던 유투브에서 난 한 동영상을 보고야 말았다. 유족들 앞에서 초로의 한 여인이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그는 신념에 가득찬 듯 소리를 내질렀다. 자식팔이 그만하라고. 그리고 지금 대통령이나 되니 너희들을 그냥 봐주지 아니었으면 너희들 다 감옥행이라고. 그 자리에서 희생자의 어떤 어머니는 가슴을 치며 쓰러지셨고, 어떤 분은 세상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해내셨다.
3. 동영상이 아니라 댓글을 보지 말았어야 했다. 댓글을 보며 난 지옥이 바로 현생이며, 악마란 바로 내 곁의 이웃이겠구나 깨달았다. 몇 개의 댓글을 보고서 토할 것 같아 브라우저를 닫았지만 그 트라우마를 지울 수 없다. 사람이란 얼마나 잔인하고 또 공격적인가.
4. 난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느끼고 공감하는 게 인간과 동물을 구별짓는 특별한 능력이라고 생각해 왔다. 내가 틀렸다.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보이지 않는 걸 상상하는 능력이 동물과 다른 인간만의 독특함이었을 뿐이다. 오히려 조류, 포유류가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같은 종족의 슬픔과 고통을 공감하고 나누고 있었다. 거꾸로 이야기하자면 조류나 포유류보다 못한 인간들이 이 세상에 가득하다는 이야기다.
5. 내 우울증을 이야기했더니 지인께서 충고하신다. 한국 사회에 그나마 미련과 기대가 있기 때문이라고. 모든 걸 다 포기하면 그런 고민도 없을 거라고. 틀린 말도 아니다. 다만, 그리 됐을 때 내가 또 다른 태극기 부대가 되지 않으려나 걱정이다. 다들 행복하자.
2023년 2월 8일
신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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