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요사이 이상스레 의사들하고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런 기회가 많아진 뒤에 바로 의대교수들도 외래 진료를 그만두고 오늘은 동네병원들까지 휴진을 하는군요. 요사이의 의사 파업을 바라보는 저의 솔직한 생각을 적어볼까 합니다. 개인적인 경험때문에 의사들에 대해 좀 감정적이고 냉소적인 면이 있다는 전제를 먼저 하도록 하죠.
1. 저는 이번 의사들의 폐업이 한 기득권층의 마지막 발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의협이 주장하는 것처럼 국민의료체계 개선과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죠. 이번 폐업을 통해 의사들이 상당 부분 무엇인가를 얻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결국은 그들의 기득권 해체라는 커다란 흐름에서는 별로 비껴나지 못할 것입니다.
2. 국민 건강과 의료체계 개선을 위해 파업한다는 의협이나 의쟁투의 입장에 저는 하나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의협이나 의쟁투의 공신력보다는 한겨레신문이나 인의협이나 시민단체의 공신력을 더 믿습니다. 제가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대화를 나눠본 의사들은 마치 녹음이나 한 듯이 같은 논리와 단어로 앞의 세 단체에 대해 융단폭격을 가하더군요. 인의협이 의사폐업을 반대한 뒤에 회원의 80%가 감소했으며, 인의협은 DJ와 연결된 단체이다는 둥.. 제게는 솔직히 DJ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별로 인의협의 공신력을 해치는 논리로 다가오지 않더군요. 오히려 참 의사들 쪼잔하다고 불쌍하다는 생각으로 다가오더군요. 80년대 이후 나름의 의료체계 개선과 민중의료를 위해 노력해 온 인의협에 대한 그러한 공격은 사실 역겹더군요. 톡까놓고 이야기해서 의협이나 의쟁투가 지금껏 의료체계 개선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더군요. 이에 대해 반박하기를, 지금껏 의사들은 잘못된 체제 속에서 그나마 만족하고 살아왔으나 이제는 그것을 고쳐보겠다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글쎄요.. 적당한 떡고물을 받으면 아마 다시 예전처럼 그렇게 불친절하고 고압적이며 무성의한 진료를 계속할 것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시민단체에 대해서는, 시민단체들이 정부로부터 100억원대의 돈을 받아서 정부보다 앞서서 정부논리를 대변한다고 하더군요. 굉장히 긴 이야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민노총이나 경실련의 입장을 더 믿죠(!) 의협보다는.. 한겨레신문에 대해서도 비슷한 논리이고..
3. 의사들의 주장을 듣다보면, "이 사람들의 말이 사실일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사실 요즘 Fact라는 것을 믿지 않죠. 오로지 입장을 중요시 할 뿐입니다. 의협의 주장은 철저히 의사들의 입장일 뿐이라는 것이죠. 저는 저와 제 가족의 입장이 더 중요합니다. 의협의 가장 큰 문제는 이 사태의 또다른 한 축인 정부와 약사, 국민들에 대해 거의 목에 칼을 들이대면서 항복을 강요하는 것 같더라는 것이죠. 의사들의 입장은 당신들의 입장일 뿐입니다. 저는 저의 입장이 있죠.
4. 이 사태를 겪으며 저는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사회에서의 모든 문제는 오로지 권력싸움일 뿐이다. 그리고 돈과 권력이 많을 수록 잘 보호받는다. 전공의들 40일이 넘게 파업해도 월급 다 받잖아요. 잡혀들어가도 거의 뭐 다 쉽게 풀려나오죠. 역시 이 사회에서는 힘(돈+권력)이 있어야 합니다. 차수련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보세요. 보건의료노조 파업 주도했다고 바로 체포영장 나오고 지금은 2달 가까이 명동성당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피신 겸 농성을 하지 않습니까? 차수련위원장이 인권하루소식과 의사파업과 관련하여 한 인터뷰가 있는데, 심심하면 한 번 읽어보세요.(인권하루소식 8월 2일자) 그리고 가장 시민단체다운 시민단체로 운영되고 있다고 인정되는 인권운동사랑방의 의사폐업에 대한 입장도 읽어보시는 것도 좋죠.(인권하루소식 8월 20일자)
5. 의사들이 폐업할 수도 있고, 단체행동을 할 권리도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저는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나 허준이되어야한다고 믿는 사람도 아닙니다. 제 입장(!)은 단순합니다. 별로 의료의 질도 나아지지 않으면서 쥐꼬리만한 노동자들 월급에서 돈이나 더 떼어내려는 의료계 폐업에는 절대 동의 못한다는 거죠. 어차피 세상은 진실은 없다고 봅니다. 오로지 살벌한 입장만이 존재하지.. 의사들의 Fact는 의사들의 '입장'일뿐이죠.
6. 아프지 맙시다.
2000년 9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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