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엎드려 큰절할 때 팔을 구부리지 않는다. 두 팔을 꼿꼿하게 세우고 고개만 '까딱'한다. 죽은 자에게 절할 때는 오른손을 위로 겹치고 산 사람에게는 왼손을 위로 올려 겹치기는 하지만 큰절을 한다고 팔을 굽히지 않는다. 내 어린 시절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가르치셨다. 마을 훈장님이셨던 할아버지는 예란 '갖추는 것'이지 낮추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셨다. 큰절하든 묵례를 하든 고개만 '까딱'하라고 가르치셨다. 지금껏 살아오며 우리집 식구 빼놓고 그렇게 절하는 경우를 딱 한 번 봤다. 20여 년 전인가 TV에 경상도의 한 산골 마을이 소개되었는데 거기 훈장님께서 그렇게 절을 가르치시고 계셨다. 우연인지 그분도 황해도 평산 신가였다.
내 할머니는 소학교도 못 나오시고 글도 읽지 못하던 분이셨다. 할머니는 내 귀가 따가울 정도로 '콩 한 쪽도 친구와 나눠 먹으라'는 말씀만 하셨다. 내가 콩 한 쪽을 친구 4명이 나눠 먹으면 먹을 게 없다고 그렇게 따박따박 따져도 여하간 친구와 나눠 먹으라고 가르치셨다. 보릿고개의 기운이 아직 남아 있던 70년대 말 궁벽한 전라도 산골에 봄이 오면 또 다른 불청객이 내 고향을 찾곤 했다. 어린 우리가 '양아치'라고 불렀던 상이군인들이었다. 발이 잘려 목발을 하고 손이 잘려 갈고리를 한 이들은 봄이 되면 먹을 것을 찾아 산을 넘어 내 고향에 오곤 했다. 이들이 오면 마을 분들은 대부분 문을 걸어 잠그고 인기척을 숨겼지만 할머니께서는 쌀을 내어 주시고 오히려 한 상 크게 차려 이들을 대접했다. 눈물 흘리며 밥 먹던 이들의 모습을 할머니 치마폭에 숨어 지켜봤던 모습이 생생하다.
환절기 탓인지 좋지 않은 소식이 자꾸만 전해 오는 한 주다. 문득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이 나 몇 자 기록해 놓는다.
2017년 2월 25일
신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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