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년말 휴가때 세 권의 책을 읽게 되었다. 숭산큰스님의 말씀을 현각스님이 옮긴 [선의 나침반 1, 2]와 한겨레신문의 종교담당 기자인 조연현씨가 쓴 [나를 찾아 떠나는 17일간의 여행]이 바로 그 책들이다.


2. 원래 년말이라 광주와 청주를 도는 전국 투어를 해야한다는 압박이 상당했는데, 어느 순간에 그러니까 원불교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마음의 경계"가 움직인 것이다. "아, 내가 이렇게 본가와 처가를 다녀오는 것을 피곤함으로 여기고 있구나. 나는 왜 이 소중한 시간을 나를 찾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 없는가?"하는 의문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래서 이 세 권의 책을 골라 읽게 되었고, 오랫만에 독서의 즐거움과 함께 "참나"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3. [선의 나침반1, 2]는 그러니까 "불교의 광해에서 몇몇 요긴하고 간절한 말씀을 추려주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사실 꼭 불교에 관한 책으로 읽히지만은 않는다. 숭산큰스님이 계속 강조하는 것은 "오직 모를뿐"이라는 화두 속에 찾는 "참나"와 이 "참나"의 보살행이다. 이 큰 가르침은 종교라는 울타리를 없애고, 진정한 생명과 영적인 충만, 즉 깨우침에 대해 계속 이야기한다. 결국은 작금의 "큰 꿈"에서 깨라는 이야기이시다. 이 책을 "마른 지식"의 지적인 성찰을 위해 읽지 말라고 현각스님은 부탁하셨지만, 그래도 진리 곧 베리타스(veritas)에 대한 부분에 대해 옛 스승들이 논하는 부분들을 읽다보면 참 덤으로 여러 이야기거리를 얻기도 한다.


4. 한겨레신문 기자 중 정세라기자 다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조연현기자가 쓴 [나를 찾아 떠나는 17일간의 여행]도 "참나"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불교, 원불교, 천도교, 기독교, 천주교, 티벳불교, 심지어 외국의 공동체 등에서 저자가 직접 참선 수행과 "참나"를 찾는 정진을 하면서 겪은 경험과 느낌을 그대로 옮겨 적고 있는 책이다.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기 직전에 가서야 자신의 내면을 보게 되었다는 기자의 이력이 범상치않게 느껴지는 이 기자의 내적인 성찰 또한 예사롭지 않다. 이 책의 첫 주제인 "당신은 진정 누구입니까?"는, 말 그대로 글자 하나하나가 내 눈 안으로 깊이 들어와 내면에 새겨지는 느낌을 주는 글이었다. 돌이켜보건데, 작년 1년 간의 내 독서 주제라는 것이 고작 경영학, 마케팅, 프로그래밍을 오르내린 것에 불과하며, 이러한 독서라는 것이 결국은 모래 사장에 모래 한 알 추가하는 마른 지식에 다름아니었다는 반성이 밀여오던 것이었다. 세상과의 불화와 우울증의 원인을 내 외부에서만 찾고 있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과도 함게 말이다. 꼭 추천하는 책이니 시간나면 읽어보기를 강권하는 바이다. 이 책을 읽으며, 기존에 가졌던 기독교신앙에 대한 밑모를 적대감도 많이 사라진 편이다.


5. 오늘은 우연찮게 무의당 장일순선생의 [나락 한알 속의 우주]라는 이야기모음집을 읽게 되었다. 장선생의 이야기를 읽으며, 왜 이야기라고 표현하는지 읽어보면 안다, 그의 활달하고도 자유로운 사고와 한 차원 높은 그의 사상체계에서 종교와 생명, 그리고 그의 행동거지에 참으로 많은 존경을 보낼 수 밖에 없었으며, 그의 생전에 내가 그를 몰랐다는 사실이 참으로 부끄럽게까지 느껴지던 것이었다. 유신시절 지학순주교, 김지하, 김민기 등과 함게 "원주모임"을 이끌었던 분이며, 김지하의 사상적 정신적 지주이시기도 한 분이다. 천주교도이면서도 불교, 천도교, 노장사상을 넘나들며 생명본위의 사상을 이야기하시는 그의 사상은, 뭐랄까 참 나같은 범인과는 그릇이 다르다고나할까 그런 느낌을 준다. 그는 특히 천도교의 한울사상을 이러한 생명사상의 큰 바탕으로 삼으시고 한살림운동소비자조합운동을 펼치시기도 한 분이시다. 재밌는 경험 하나. 이 책을 읽다보니 대담자로 정현경이화여대 교수가 나왔다. 순간적으로 얼마전에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뉴욕 유니언신학대학의 종신교수가 된 정현경교수와 동일 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접속하니, 정현경교수가 쓴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거야]라는 책이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녀도 이 책에서 [참나(true self)]를 찾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기쁜 마음으로 그녀가 최근에 낸 세 권의 책을 구매했다. 묘한 우연아닌가?


2002년 1월 6일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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