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리"란, 푸코의 표현을 빌자면, 누군가에 의해 선택된(!) 진리라고.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남이 선택한 진리를 나는 그저 진리로 믿어왔다고.
2. 종교에 대한 편견 중 내가 가장 심하게 가졌던 것들이 아마도 "여호와의 증인"과 "나무묘호렝게교"에 관한 것들이 아닌가 싶다. "여호와의 증인"이 되면 집안이 풍지박살나고, 가정이 파괴된다든지. 나무묘호렝게교(남묘호랑교라고 그러는 것 같던데 우리나라에서의 정확한 명칭이 뭔지 모르겠다.)는 일본의 쪽발이 불교라고 하는 그런 내용들 말이다.
3. 사실 "여호와의 증인"이 보여 줬던 집총거부와 입대거부를 보면서, 사상이 불손한 녀석들이라고 역시나 이단의 종교라고, 누군가 이야기했던 "진리"를 너무나 쉽게 받아들였던 것이 사실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 얼마 전 우연히 읽은 미국 종교에 관한 글을 보고서야 나는 그때까지의 나의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속좁은 혹은 남의 의해 크게 휘둘렸던 믿음이었던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미국 역사 - 그러니까 그 대학살과 침략과 전쟁의 미국 역사 말이다- 속에서, 단 한번도 포기하지 않고 가장 끈질기게 비폭력 반전 평화 운동을 전개했던 유일한 개신교 종단이 바로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대목을 읽었기 때문이다. 평시에 사랑과 평화를 이야기하던 대부분의 종단이 전쟁 개시와 동시에 구국기도회, 애국기도회와 같은 행사를 벌여 적들의 죽음과 파괴와 멸망을 기도했음에 반해 "여호와의 증인"은, 간디의 표현처럼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바로 그 평화가 길이다"를 온몸으로 생생히 보여줬던 것이다. 물론 그러다 졸라 잡혀 갔지만 말이다. 전시에 이보다 더한 실천과 행동이 도대체 어디에 있더란 말이냐? 그러니, 불살생을 제일 중요시하는 불교의 오계를 받고서 출가한 땡초들마저도 호국불교를 외치는 이 땅에서 어찌 제 정신으로 이해가 되는 종교이였겠는가 말이다. 요즘에 와서야 이들의 이 척박한 땅에서의 입영거부가 새로운 사회적인 화두가 되고 있음에 다행스러움을 느끼며, 그들의 몇십년간에 걸친 이 땅에서의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 진정한 존경의 마음을 보내고, 나의 그들에 대한 편견에 대해 사과하는 바이다.
4. 나무묘호렝게교의 사원을 처음 본 곳은 바로 신혼여행지였던 네팔의 포카라였다.(한국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름다운 푸아 호수 위 높다란 산 위에 금빛으로 번쩍이는 사원을 보고서 "역시나 돈 많은 일본놈의 불교구나"라고 뇌깔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읽은 책 속에 나무묘호렝게교의 세계 평화를 위한 활동이 나오는데 참 대단하더라. 보스니아, 캄보디아 등 세계 곳곳의 분쟁 지역에서 이 종교의 스님들이 평화 시위를 벌이는 대목인데, 실제로 폭격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징과 음악을 앞세워 평화시위를 벌였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캄보디아에서는 지뢰가 터져서 많은 스님들이 죽기도 하였겄만 결코 두려움없이 그들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대목을 읽다보면 신도수 늘리기에 급급하거나, 경제적 문화적 우월주의에 가득한 채 - 박노자의 표현을 빌자면 100년 전에 서구의 선교사들이 조선을 대했던 것과 너무나 동일한 의식구조로 - 제3세계 포교를 단행하는 우리의 개신교 모습이 떠오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단지 일본불교라는 이유 - 이런 신념을 강화시킨데에는 90년대 초에 한겨레기자가 썼던 어떤 기사 하나도 영향을 미쳤다. - 만으로 내 마음 한칸으로 유배시켰던 이 종교에 대해서도 참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든다. 내가 만지지 않고, 내가 보지 않고, 내가 냄새 맡지 않은 것들을 진리로 믿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말이다.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라는 재패니메이션에 나오는 인형사 - 인공지능 프로그램 -가 던지는 말 하나. "사람은 단지 기억에 의해 개인일 수 있다. 그 기억이 환상의 동의어일지라도"
그런데 도대체 내 기억 속 환상은 어디까지일까?
2002년 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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