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라이헤
1903년 독일 출생
1998년 95세의 나이로 사망
세줄의 짧은 약력으로 그녀의 삶을 요약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제 저녁 처음으로 나는 그녀에 대해 알게 되었다. 무심코 서점에서 사 든 한 권의 책을 통해 그녀의 삶을 알게 되었고, 참으로 오랫만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리아 라이헤는 95년 이라는 긴 삶 중 3분의 2 이상을 페루에 있는 나스카 대평원을 지키고 연구하는데 바쳤으며, 바로 그곳에서 삶을 마쳤다. 그녀는 1930년대 말부터 나스카 대평원의 연구에 몰두했으며, 그것이 그녀의 평생의 업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고 한다. 그녀는 나스카에서 26년간 거의 극빈층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도, 나스카 대평원의 그 거대한 문양과 상징들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측량하고 도면에 옮기며 그러한 문양과 상징의 연구 작업을 했으며, 나스카 대평원의 아름다움과 소중함, 그리고 그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리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이러한 그녀의 노력에 감동한 페루 정부는 1979년부터 나스카에 있는 국립 호텔을 평생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을 그녀에게 주었다고 한다. 이후에도 그녀는 수많은 훈장과 포상을 페루정부로부터 받게 된다.
내게 가장 감동적인 대목은 그녀가 1955년 페루 정부의 나스카 대평원 관개계획을 무산시킨 이야기였다. 당시 페루 정부는 안데스 산맥 동쪽의 아마존 강의 물을 끌어와 나스카 대평원에 관개하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그녀는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그 계획을 실행 직전에 무산시켰다. 만약, 그 당시에 그러한 계획이 실행되었다면, 인류의 가장 소중한 문화유산 중의 하나인 나스카 대평원은 저 역사 속으로 수장되고 말았을 것이다. 한 인간의 노력과 열정이 얼마나 위대할 수 있는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마리아 라이헤가 확실히 나스카 대평원에 미쳤다고 볼 수 있는 이야기가 또 있다. 그녀는 나스카 대평원의 그 수많은 문양과 상징을 가장 잘 촬영하기 위해, 헬기 아랫 부분의 착륙대에 널판지를 놓고서 그 곳에 올라서서 몸을 헬기에 묶은 채 수직 방향으로 나스카 대평원을 촬영했다고 한다. 그러한 그녀를 찍은 사진을 보면서 참 할 말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즉, 그녀의 몸이 완전히 헬기 밖에 있었던 셈인데, 그 당시의 나이가 이미 50이 넘었을 때였다고 한다. 사실 사진측량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연직방향에서 찍은 사진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잘 안다. 그녀는 정밀기기가 제공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러한 연직사진을 찍기 위해 그러한 모험을 했던 것이다.
현재 페루의 나스카 대평원은 차량은 물론 사람의 출입조차도 엄격히 통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지난 98년엔가 한국의 한 광고회사가 그곳에서 광고를 촬영하며 나스카 대평원을 손상시킨 일이 있었다. 나도 그 기사를 신문을 통해 읽은 기억이 난다. 그 당시가 라이헤여사가 살아 있을 당시였다면, 그녀의 반응은 어떠했을까하는 두려움이 몰려온다. 나스카 대평원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연구자들은 예민한 곳을 지날 때는 널빤지를 깔고서 움직일 정도라는데 말이다.
오랫만에 참 감동적으로 책을 읽었고, 그래서인지 창 밖의 푸른 하늘만큼이나 기분이 좋은 하루다.
2001년 7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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