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뽕과 식민사관은 일란성 쌍생아다.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한 이유다. 비루한 삶을 살았든 성공한 삶을 살았든 지나간 조상의 삶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없다. 과거를 있는 그대로 현재에 비추어 미래의 등불로 삼을 수 있을 뿐. 2. '우리역사 과학기행'은 전문학자가 일반인을 위해 풀어쓴 전통 과학사 책이다. 우리 역사에서 중요하거나 흥미로운 과학 주제 18개가량을 추려 설명하고 있다. 첨성대, 석굴암, 훈민정음, 신기전, 거북선같이 익숙한 것에서부터 천하도, 간의, 혼천시계같이 낯선 주제까지 다양하게 포괄하고 있다. 천문학 관련 주제가 제법 많다. 3. 저자는 전통 과학에서 현대 과학과 유사한 형태만 찾으려는 시도를 경계한다. 현대과학과 유사한 성취가 있었던 시대를 전통 과학이 발전한 시대로 이해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를 반과학의 시대로 간주하는 그런 위험성 말이다. 과학 또한 당시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탄생, 발전하는 역사적 산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4. 첨성대를 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대로 알려진 첨성대를 우리는 오롯이 현대 천문학의 관점에서 이해하려 한다. 하지만, 고대의 천문대란 '천문을 관측하는 곳'이 아니라 '천문에 대해 묻는 곳'이었다. 즉, 하늘의 뜻을 헤아리는 곳이었고 그렇기에 하늘을 살피며 동시에 제를 올리는 곳이었다. 하늘을 살피고 하늘에 제를 올렸던 곳이라고 해서 첨성대가 천문대라는 사실이 부정되는 것이 아니건만 많은 이들은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 첨성대를 별 관측소로 한정 지으려 한다. 5. 거북선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거북선 신화에 의문을 제기하며 이 거북선 신화가 일제강점기에 시작되고 박정희 정권 때 강화되었음을 지적한다. 많은 이들의 생각과 달리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은 고작 3~4척밖에 건조되지 않았다. 거북선은 판옥선에 덮개를 씌운 것이었고 돌격용 배였다. 당시 조선 수군의 주력선은 판옥선이었고 이 2층 구조의 판옥선은 원거리에서 화포로 일본의 주력 군선 세기부네를 효율적으로 제압했다. 거북선은 일본 수군에 돌진하여 대열을 흐트러뜨리는 데는 확실히 효과적이었지만 시야를 확보하지 못한 채 공격해야 해서 그 위력이 그렇게 대단하지 않았다. 거북선이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라는 칭호 또한 현대의 관점에서 그 의미를 부여한 것일 뿐 당시에는 그저 덮개에 일본 수군이 기어오르지 못하게 하기 위한 장치였을 뿐이다. 즉, 현대의 철갑선과는 맥락이 다르다. 6. 저자는 오히려 판옥선의 탄생과 그 우수성에 주목한다. 판옥선은 임진왜란 50년 전에 탄생했다. 왜구의 침략이 잦아지고 타고 오는 배의 규모와 성능이 우수해지자 이에 맞대응하기 위함이었다. 판옥선은 노를 젓는 1층과 화포와 수병이 배치된 2층으로 구분된 획기적 전투선이었다. 배 자체도 우수했지만 판옥선의 우수함은 고려 말 이후 조선 초기를 거쳐 지속적으로 발전을 거듭한 대형 화포의 등장에 힘입은 바가 크다. 뛰어난 기동성과 화포로 무장한 판옥선은 대형 화포 없이 근접 전투에만 의존한 일본 수군을 원거리에서 궤멸시킬 수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원균의 패배는 모두 기습 공격을 받아 근접전에 말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일제는 문약한 조선사회라는 인식을 강화하려 하였고 그 가운데 우수한 판옥선은 의도적으로 무시한 채 거북선만을 신비로운 군선으로 묘사하였다. 그리고 거북선은 이순신이라는 단 한 명의 영웅하고만 연결되었다. 7. 조선시대가 문약한 사회만은 아니었다. 사신을 통해 중국과 서양의 선진문물을 수입해 오는데 적극적이었으며 조선의 상황과 맞지 않는 기기나 지도 등은 직접 개량하고 발전시켜 사용했다. 서양 근대과학과 지도가 몰려들어오며 세계관에 많은 혼돈이 있었지만 서양 과학기술들을 도입하여 응용하고 융합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17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혼천시계 같은 경우 동아시아의 혼천의와 서양의 자명종 기계장치가 통합된 당시 최고의 시계 중 하나였다. 19세기에 휴대용 앙부일구(해시계)를 제작했던 강건과 강윤은 중인 출신으로 규장각의 잡직 관료였지만 실력을 인정 받아 두 명 모두 말년엔 종1품직까지 올랐다. 지금의 시각에서 보자면 말단 엔지니어가 장관직까지 오른 셈이다. 8. 저자는 우리 문화의 우수성이나 과학적 역량을 확인하고 싶다면 다른 책을 읽으라고 권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어느덧 우리 과학의 참모습을 만나게 된다.


2019년 1월 12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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