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애가 졸업했다. 영국에서 리셉션 클래스에 들어가며 초등학교 다니기 시작한 지 8년 만의 졸업이다. 8년 동안 케임브리지와 서울을 거쳐 여기 세종까지 세 학교에 다녔다. 졸업식은 코로나 때문에 부모들은 참석 못하고 학생들만 참석한 채 반별로 치러졌다. 다행히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졸업식을 구경할 수 있었다.
애는 항상 선생님 복이 있었던 것 같다. 언론이나 주변에서 이야기 듣던 그런 이상한 선생님을 만난 적이 없다. 대부분 애를 사랑하고 아끼는 좋은 분들이셨다. 그중 몇 분이 인상 깊다. 애의 첫 선생님이었던 Mrs. Hope 선생님이 우선 떠오른다. 영어 한마디 못하는 애가 반에 배정되자 거의 두 달 동안 수업 시간에 따로 시간을 내어 애를 옆에 앉혀 놓고 영어책 읽어 주고 읽히며 영어를 가르치셨다. 그 덕분에 애는 학교에 빠르게 잘 적응했다. 애 하교 시키러 학교에 가면 아이 건강이나 일상생활과 관련해 내가 알아야 할 점을 잘 일러주시기도 하셨다. 다음으로 생각나는 분은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시다. 선생님은 애가 성장할 때 '결정적 시기'의 중요성을 솔직하게 내게 충고하셨던 분이다. 애 엄마 직장 때문에 주말 가족이 되면서 애가 당시 정서적으로 상당히 불안한 때였다. 선생님은 애를 잘 지켜보고 계셨고 통화나 문자로 내게 애 상태에 대해 당신의 의견을 잘 전달해 주셨다. 애를 꼬드겨 풍물패에 가입시키신 선생님이시기도 하시다. 애는 풍물패에 빠져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연습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풀었던 것 같다. 엄마 보고 싶은 그리움도 함께. 해외 출장 갈 때마다 가능하면 애 데리고 가거나 아니면 애 엄마까지 함께 가게 된 것도 이 선생님의 충고 덕이다. 마지막으로 이곳 세종의 6학년 선생님도 참으로 고맙다. 아직 애띤 젊은 선생님이신데 애 한 명 한 명 챙기고 가르치시는 맘이 대단하시다. 가만있어도 사랑이 우러나는 느낌이랄까? 혁신학교라 이런저런 여러 실험도 하지만 공부를 제대로 안 가르치는 것도 아니다. 시험을 보고서 성적이 기준점 이하면 학원이고 뭐고 당신이 애 붙잡고 방과 후에 공부시켜서 집에 보내시는 분이시다. 아예 학기 초에 학부모들에게 그렇게 가르칠 거라고 공지하기도 하셨다. 오늘 졸업식 때 애들이 선생님을 위한 감사 인사 동영상과 직접 만든 선물을 왜 그리 많이 준비했는지 이해가 되기도 했다.
애는 전반적으로 건강하게 컸지만 3~4학년 때는 이래저래 많이 아프기도 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복통과 두통에 시달렸는데 이대목동병원, 보라매병원 등 큰 병원 다니며 MRI 찍고 CT도 찍고 별의별 검사를 다 했지만 원인이 나오지 않았다. 의사들은 심리적 요인을 지목하곤 했다. 아프기 시작한 게 딱 우리 가족이 주말 가족이 된 뒤부터였으니까. 그때는 참 쉽지 않은 삶이었는데 아프면 병원 데려가고 검사하고 약 받아오고의 반복이었다. 너무 지쳐서 하루는 아는 교수님을 붙잡고 하소연했더니 그 교수님이 '저도 비슷한 경험이었는데 애가 크면 저절로 낫더라구요.' 하셨다. 큰 위로가 된 말이었다. 이 힘든 삶도 언젠가는 끝이 있구나! 그런 희망 같은 게 느껴져서였다. 5학년부터는 증상이 많이 줄기 시작하더니 6학년 때는 거의 아프지 않았다. 애도 컸고 엄마랑도 함께 살고 있으니 그러지 않았나 싶다. 심리적으로 많이 안정되었지만 가끔 이야기를 나눠보면 아직도 여리디여린 깨지기 쉬운 유리잔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애는 초등학교 다니는 내내 교과 학원에 다니지 않았다. 미술과 피아노 학원은 5학년까지 다녔지만 이마저도 이사 오면서는 모두 그만뒀다. 걱정돼서 가끔 수학이나 영어 학원 이야기를 꺼내 보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서울에서도 학원 안 다니는 유일한 애였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그냥 학원비 저축해서 가족 여행 다니고 아니면 그 돈으로 펀드나 들어주는 편이 낫겠다 생각 중이다. 스스로 납득하지 않으면 동기부여가 전혀 안 되는 성격이라 더는 말도 안 꺼내고 있었는데 새해가 되더니 갑자기 중학교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기로 했다고 말을 건넨다. 반가워서 어떻게 공부할 생각이냐고 물으니 여전히 학원 다닐 생각은 없으며 독학으로 학원 다니는 애들보다 더 공부 잘 하는 걸 보여주겠다고 한다. 의지를 보여주겠다며 1년 묵은 자기 책상을 깨끗이 치우기도 했다. 너를 믿는다며 알아서 잘해 보되 혹시나 학원에 다니고 싶거든 언제든지 이야기하라고 했다. 근데, 왜 갑자기 공부할 맘을 먹었냐고 물으니 친한 친구들이 요즘 중학교 선행학습을 하는데 문제집을 보니 숫자보다 알파벳이 더 많아 이제 약간 공부를 시작해야겠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아직도 애 꿈은 천체물리학자인데 나는 애가 K-Pop 작곡가가 됐으면 좋겠다. 요즘도 작곡에 열심이고 제법 괜찮은 곡을 뽑아내서다. 직업적으로도 과학자보다는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더 전망 있어 보인다. 여하간 애에 따르면 작곡은 아무 때나 맘에 드는 멜로디가 떠오르지 않아 확신이 없다고 한다. 작곡 학원 다녀볼 생각 없냐고 말 한 번 건네봤다가 역시나 대차게 거절당했다. 호기심도 많고 꿈도 많고, 하고 싶은 일 있으면 스스로 알아서 잘하는 성격이라 애 미래에 대해 사실 큰 걱정 안 한다. 다만, 한국 사회가 워낙 학벌 중심 사회라 나중에라도 혹시나 재능에 비해 기회를 잃을까 그것이 걱정될 뿐.
애가 막 태어나 내 품에 안겨 빙그레 웃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중학교 3년과 고등학교 3년은 더 빠른 속도로 흘러갈 것이고 난 또 지금처럼 가끔은 안타까워하고 가끔은 기대하며 옆에서 애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애에게 졸업 소감을 물으니 딱 한 마디 한다.
"나 이제 잼민이 아냐!"
2021년 1월 4일
신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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