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경은 제게 한동안 잊혀진 도시였습니다. 서울에서 학교 다닐 때 광주집에 가는 통일호, 비둘기호가 멈추던 곳이어서 익숙한 이름이었지만 특별히 더 관심을 둘 이유는 없었습니다. 가끔 강경이 젓갈로 유명하다는 소리를 흘려듣곤 했지요. 


2. 사람의 지위에 따라 보이는 풍경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동수단에 따라 보이는 도시의 이미지는 이동속도만큼이나 차이가 나더군요. 기차나 차로 빠르게 스치며 보는 도시와 자전거를 타고 발로 걸으며 느릿느릿 느끼는 도시는 다르기만 합니다. 


3. 강경을 다시 알게 된 건 올봄이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몇 번 강경을 가고서야 강경이 그저 그런 도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높이 50m도 안 되는 강경 옥녀봉에 올라 도도하게 흐르는 금강을 보자마자 강경의 영화와 쇠락, 그리고 왜 젓갈이 그리 유명한지 단박에 깨닫게 되더군요. 


4. 강경은 과거 꽤 번성한 도시였습니다. 1925년에는 조선과 일제강점기를 통틀어 네 번째로 노동조합이 결성된 도시였고, 1929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의 시장경제>는 강경을 조선의 3대 시장이라고 기록하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1925년 강경노동조합 결성 당시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조합 자체 건물을 직접 지어 사무실로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이 건물은 지금은 문화재이자 강경역사문화연구원 사무실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5. 옥녀봉 밑에서 수십 년째 '옥녀봉구멍가게'를 운영하시는 주인 할머니랑 이야기를 나눠보니 1970년대까지도 강경의 번성은 상당했던 모양입니다. 할머니 젊은 시절에는 옥녀봉 밑 강경포구에 사람이 들끓어서 발을 옮기기 힘들 지경이었다고 하시더군요. 조금때 들어온 수십 척의 어선이 장관이었고, 여관, 술집, 가게로 불야성이었다고 합니다. 여름 옥녀봉 널바위는 더위를 잊으려 웃통 벗고 잠자는 젊은 남정네들 차지였답니다. 이런 영화는 금강하굿둑 공사와 함께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서해로 배가 드나들지 못하게 되면서 한 집 두 집 강경을 떠났기 때문이지요. 나라에 어떻게 항의라도 해 보지 그러셨냐고 물으니 "나랏님이 하는 일이라..."며 조용히 웃으십니다. 


6. 이제 배는 들어오지 않지만, 그때 염장법은 그대로 남아 아직도 강경이 전국 최고의 젓갈 주산지로 이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작은 읍에 젓갈 가게만 140개가량이 있습니다. 강경읍에서는 사람보다 젓갈통이 더 많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실제 강경읍내를 걷다 보면 두 집 건너 한 집이 젓갈 가게가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7. 강경은 일제강점기 때 2대 포구, 3대 시장 중 하나로 꼽힐 만큼 번성했던 곳인지라 일본 적산 가옥이 제법 남아 있습니다. 더불어, 일제강점기 때 신사참배를 최초로 거부했던 강경성결교회같이 항일운동의 거점이기도 했지요. 김대건 신부님의 최초 사목지이기도 합니다. 근대사의 여러 흔적이 중첩되어 있습니다.


8. 논산시는 강경을 ‘근대역사문화도시’로 재조성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오늘 다녀온 강경구락부였습니다. 논산시가 일제강점기 건축물인 (구)한일은행 강경지점과 주변 건물들을 사들이고 과거를 재현한 공간입니다. 그곳에는 강경호텔도 있는데 실제 숙박할 수도 있습니다. 


9. 강경 근대역사문화거리를 경주의 황리단길, 전주의 한옥마을, 군산의 근대문화역사거리와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많이 부족하고 세련됨도 떨어지지요. 다만, 강경에는 아직 삶과 정이 남아 있더군요. 낯선 관광객에게 나서서 강경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해 주시는 초로의 자원봉사자가 있고, 다리 아프니 가게 앞 의자에 앉으라고 권하시는 할머니가 계시더군요. 


10. 강경에 가서 걸으세요. 그냥 여기저기 걸으세요. 역사문화거리도 걷고 옥녀봉에도 오르고 역사관에 들러 역사 공부도 하다가 젓갈도 사고 그러세요. 국보급의 화려한 문화재는 없지만, 맛 깊은 젓갈처럼 여운은 길게 남을 겁니다.

 

 

 

 

 

2022년 9월 23일
신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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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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