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영화 파묘 보다가 내 고향이 떠올라 몇몇 썰을 풀어 본다. 파묘에 나온 이야기가 꽤 익숙해서 말이다. 내 고향에서 듣고 경험했던 신비롭고 무서운 이야기들 말이다. 


1. 내 고향은 전라도 담양의 궁벽한 산골이다. 전기가 1977년 늦봄에 들어왔고, 1978년까지 2주에 한 번씩 미군이 제공한 건빵을 먹었다. 읍내랑 연결되는 제대로 된 길 하나 없다가 198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본격적인 신작로 공사를 시작해 1982년에 완공되었고 그때부터 버스가 다니기 시작했다. 국회의원 선거는 예나 지금이나 지역 발전의 원동력이다. 


2. 고향 마을에는 초등학교 분교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분교를 다니다가 5학년부터는 직선거리로 한 4km 떨어진 읍내 본교로 다녀야 했다. 직선거리로 4km인데 이게 산 하나를 넘는 거라 실제로는 더 멀었다. 걸어서 어른들은 대략 1시간, 애들은 1시간 반이 걸렸다. 아침 6시 반에 학교로 출발해 8시에 등교하고, 오후 4시 반에 수업이 끝나면 다시 걸어서 저녁 6시에 돌아오는 게 일과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내던지고 텔레비전을 틀면 '동해 물과 백두산이~'하는 방송 시작이 나왔다. 


3. 깡촌인데다 산을 넘어 학교나 읍내에 다녀와야 해서 이런저런 무서운 이야기들이 많았다. 산이 경사가 급하고 우거져서 낮에도 무서웠다. 할아버지가 일가친척 중에 한 분 이야기를 해 준 기억이 난다. 장날 읍내에 갔다가 장터에서 술 한잔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문득 깨어보니 걸어도 걸어도 계속 같은 곳을 뱅뱅 돌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다 다시 걸었는데 이번에는 동네 입구 개울에서 발이 물에 빠져 도무지 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가족들이 하도 이분이 안 돌아와 찾으러 나갔다가 한 발이 물에 빠진 채 움직이지 못하고 낑낑거리는 모습을 발견했다고 한다. 가서 보니 발바닥에 머리카락이 붙어서 도무지 떨어지지 않았다고. 물의 깊이는 고작 발목 정도였다고 한다. 어찌어찌 그분을 구해오셨는데 그분은 한동안 앓다가 결국 돌아가셨다고 한다. 


4. 할아버지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직접 경험했던 일은 1981년엔가 있었다. 나보다 2년 선배인 형이 토요일 오전 수업만 하고 집으로 돌아오다 산 아랫마을에서 미친 여자를 만났는데, 그 형과 다른 동네 형이 그 정신적으로 이상한 여자를 놀리고 한참을 장난쳤던 모양이었다. 문제는 그날 밤 그 형이 자다가 집에서 사라졌다는 점. 늦은 밤에 동네가 난리 났다. 여기저기 친구 집에 자는지 알아보다가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동네 어른들이 후라쉬(랜턴의 옛말이다)와 횃불을 들고 새벽까지 그 형을 찾으러 동네 곳곳을 돌아다녔다. 나도 그때 자다가 깨서 기억이 생생하다. 그 형은 결국 새벽 4시인가 4시 반인가 동네에서 제법 떨어진 개울에서 발견됐다. 그 형 이야기로는 잠을 자는데 친구가 불러 나가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다 문득 개가 짖어서 깨어보니 개울에 있었다고. 물론 친구는 옆에 없었고. 그 짖은 개가 작은집 개여서 나도 한동안 그 개랑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다. 몽유병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 형은 그전에나 그후로나 그런 비슷한 일이 없었다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


5.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는 어느 아침 할머니가 아침을 드시다가 동네에 초상 날 것 같다고 지나가며 한마디 하셨다. 이유를 물으니, 새벽에 물 길러 샘에 갔는데 혼불이 나가는 걸 보셨다고 하시면서 혼불이 나가면 보통 누군가 돌아가신다는 거였다. 놀랍게도 그날 오후 나이 드신 한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할머니께서는 혼불을 자주 보셨고 그때마다 누군가 돌아가셨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해 주셨다. 


6. 남자들이 논일을 많이 했다면 여자들은 밭일을 많이 했다. 할머니도 밭일을 많이 하셨는데 가끔은 꽤 일찍 돌아오시곤 했다. 밭에 나가면 저녁 준비하실 때까지 일하다 돌아오시는 게 보통인데 일찍 오시면 이유가 있는 거다. 밭이라는 게 사실은 산속이다. 할머니 말씀으로는 개호랑이가 가라고 하면 돌아오셨다고 한다. 그 개호랑이는 작은 호랑이나 큰 개 정도의 크기인데 사람을 쫓아낼 때면 자갈을 양발로 쳐서 사람에게 던지곤 했다고 한다. 가끔은 사람말로 가라고 했다고도 하셨다. 할머니는 밭일 하시다가 개호랑이가 오면 바로 돌아오셨다. 할머니가 묘사한 개호랑이가 부산 일대의 장산범 특징과 유사해서 흥미롭게 생각하기도 했다. 


7. 신작로가 뚫리고 전기가 들어오며 미스터리한 일이 많이 줄었지만 1984년 사건은 지금도 친구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신작로가 뚫리고서는 읍내에서 6시 버스를 타고 동네로 돌아오는 게 학생들의 일상이었다. 종점이었던 내 고향 마을에 버스가 돌아오면 대략 7시가량이었다. 그날 내 고향 마을에서는 내 선후배와 동갑내기를 포함해 8명가량이 읍내에서 6시 버스를 탔다. 물론 중간에 서는 마을 학생들도 많이들 탔다고 한다. 읍내에서 출발한 버스가 산을 거슬러 올라 오동나무 숲 근처에 이르렀을 때 한 여학생이 길가에서 손을 들었다고 한다. 시골버스야 누군가 손들면 무조건 선다. 여학생은 버스를 탔고 다들 그 여학생이 누군인 줄 알았기에 일찍 걸어서 집에 가다 일이 있어서 중간에 버스를 탔나 보다 했다고 한다. 고향 아랫마을 여학생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그 아랫마을에 버스가 도착해 문을 열었는데 그 여학생이 버스에 없었다는 것. 아랫마을 학생들부터 난리가 났고 그 이야기는 버스가 우리 마을에 도착하기도 전에 전화로 우리 마을까지 다 알려졌다. 평소 같으면 자식들 버스 정류장에 한 번도 안 오던 동네 어른들이 다 정류장에 나와 애들을 기다렸다고 한다. 왜 어른들이 그렇게 정류장까지 나와 애들을 기다렸냐면 그 여학생이 그날 아랫동네에서 자살한 학생이었다고. 지금도 친구들이 이 이야기는 가끔 언급한다. 한 명이 아니라 우리 동네에서만 8명이 목격한 사건이라. 


8. 가장 근래의 사건은 내가 대학교 1~2학년일 때인가 있었던 일이다. 그해 여름 서울에서 일하던 동네 형이 고향으로 휴가 왔다가 저수지에서 익사한 일이 있었다. 술 마시고 수영하다 변을 당한 것. 내 친구 오빠였다. 나는 그런 일도 모른 채 그 사건 1주일인가 뒤에 여름방학이라고 친구랑 놀려고 작은집에 갔다가 그 소식을 들었다. 그때 작은 당숙모가 해 준 말이 무척이나 소름 끼쳤다. 당숙모가 밭을 매러 나갔는데 밭 근처에 있던 무덤에서 자꾸만 여자 우는 소리가 들리더라는 것. 누가 있나 하고 살펴봐도 아무도 없는데 자꾸 울음소리가 들려 그냥 집으로 돌아오시면서 뭔가 그 집안에 일이 있겠구나 하셨다고 하신다. 그 무덤이 익사한 선배의 어머님 묘였다. 그 형이 물에 빠져 죽기 며칠 전 일이었다고 한다.

 

9. 할아버지는 훈장님이셨다. 근대식 교육이 들어오기 전까지 마을 분들을 가르치셨다. 할아버지는 전문적이지는 않았지만, 풍수도 아셨고 문중의 유명한 지관들과 교류가 많으셨다. 특히, 곡성할아버지라고 나나 우리 형에게 소개해 준 신비로운 분과 교류가 많으셨다.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곡성할아버지는 축지법을 하시고 무수초(물 없이도 사는 풀)라는 약초를 알아보는 분이셨다. 새벽 3~4시쯤 그 곡성할아버지가 갑자기 오셔서 할머니가 음식 준비하고 그러셨다. 그때 곡성할아버지한테 축지법 좀 알려달라고 떼를 썼던 기억이 난다. 그 약초가 그렇게 영험하고 비싸다고 했는데 어디에 살고 어떻게 캐는지 못 배운 게 평생의 한이다. 

 

10. 다시 영화 파묘로 돌아와 이야기하자면, 할아버지는 일제가 우리 정맥 곳곳에 쇠말뚝을 박아 놓았다고 내게 이야기하곤 하셨다. 그게 영화에서 유해진의 이야기처럼 측량을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최민식이 이야기한 것처럼 1%의 확률로 호랑이의 척추를 끊기 위한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제시대에 젊은 시절을 보내고 땅을 읽을 줄 아는 분 이야기라 나는 할아버지 말을 믿고 있다. 

 

11.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던 게 있다. 문중 선조 중 어떤 분을 자갈밭에 모셨다고. 자갈 땅에 어지간해서는 안 모시는데 문중 지관이 '이 자갈이 다 돈입니다!'고 했다고. 아, 나는 이제 돈 벌 일만 남았다. ㅎ 

 

12. 후라쉬가 없으면 어디 가기도 쉽지 않던 고향이 이제 가로등으로 밝기만 하다. 파묘를 보며 어쩌면 내 고향처럼 신비롭고 무서운 이야기들이 마을마다 많을 텐데, 이런 이야기를 잘 채집하고 보존하고 연구하면 중요한 문화적 자산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역사가 별건가. 이런 이야기가 역사지.

 

2024년 3월 11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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