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상근무 중인 아내가 알려준 조리법으로 애와 떡국을 끓여 먹으며 아침을 시작했다. 아내 조리법과 유튜브를 참조하며 끓였는데 내 맘처럼 만들어지지 않아 속상했지만 애가 잘 먹어줘서 고마웠다. 새해맞이 대청소를 하고 새해 첫 OpenStreetMap 편집을 하고 거실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겨울 햇살을 커피와 함께 즐기다 공주로 산책을 다녀왔다. 다시 일상의 반복이다. 어젯밤 1년을 마감하며 뭔가 써 볼까 했지만 우울하고 영 기운이 나지 않아 그만뒀다. 새해라고 하루가 지났다고 뭔가를 끄적거려 본다.
2. 작년 최고의 성과는 내가 부족하고 모자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어릴 때부터 남들보다 세상이나 사람을 더디 읽곤 했는데 쉰 넘은 나이에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맘이 홀가분하고 편했다. 부족함을 깨달으니 주변이나 동료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리고 함께하지 않으면 큰일 꾸미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했다. 모자라니 책을 읽으며 더 공부하려 했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려 했다. 내가 했던 많은 말이나 글이, 김훈 선생 표현처럼, 웃자라고 겉멋 들지 않았나 부끄러웠다.
3. 20대 이후에 가장 많은 책을 읽었다. 세어 보니 53권의 책을 읽었다. 인간에 대해 더 많은 이해를 하고 싶어 뇌과학, 진화심리학, 동양고전 등을 읽다가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없구나를 깨닫고 죽음, 종교, 영성에 관한 책으로 주제를 옮겼다.
4. 대학 입학 이후 지금껏 과학적 방법론에 기반한 유물론자로 살았는데 이제는 영성의 힘을 믿고 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불가지론자에 가깝게 되었다. 유명 물리학자인 닐 디그래스 타이슨이 자신은 종교가 없지만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다고 했던 이유를 조금은 알 듯하다. 종교를 가질 계획은 없다. 다만, 현대과학의 그물로 해결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많은 현상과 문제에 영성과 유심론이 더 나은 설명과 대안을 제시할 때가 있다는 점만은 분명했다.
5. 육체적으로는 하루를 시작하는 습관이 몸에 붙어 기쁘다. 아침에 일어나 유산균, 오메가3, 루테인을 먹고 국민체조를 한 뒤 팔굽혀펴기를 한다. 팔굽혀펴기는 매주 한 개씩 늘렸는데 이번 주 내내 55개를 했다. 작년 1월에는 겨우 9개였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이라는 책을 읽고 진짜 아주 작은 습관 하나 만들어보자고 시작했는데 이게 되더라. 습관이란 눈덩이구나 싶다.
6. 종이신문을 다시 구독하기 시작했는데 작년에 제일 잘한 일이다. 종이신문을 보니 포털에 들어갈 일도 줄고 댓글 볼 일도 없다. 불필요한 일에 내 감정 에너지를 쏟지 않아 좋다. 더불어, 포털에서는 찾기 힘든 양질의 정보와 칼럼을 계속 접하며 다양한 시각에서 세상을 보는 힘이 생겼다. 종이신문 보라고 강권한다.
7. 전체적으로 회복력이 좋아졌다. 어지간한 일에 마음 상하지 않으며 상하더라도 쉽게 회복했다.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했지만 결과가 안 좋으면 그냥 '아, 하늘이 다른 길 가라는 뜻인가 보다.'하고 빨리 현실을 받아들인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인간에 대해 이제 애닳아하지 않는다.
8. 작년 잊을 수 없는 기억은 인도에 갔을 때다. 파트너사 회장이자 창업주와 위스키 놓고 4시간가량 우주와 영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흥미로우면서도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난 나의 영적 여정에 관해 이야기했다. 양자역학, 블랙홀, 우주팽창, 빅뱅 등에 흥미를 느끼던 유물론자가 어쩌다 인간과 대중을 거쳐 개인의 정신과 영성으로 그 관심사를 옮겼는지 그 경험을 공유했다. 창업주는 자기가 얼마 전 읽은 책에서 정확히 나와 같은 경험을 읽었다며 놀라워했다. 더불어, 자신의 영적 여정을 이야기해 주기도 했다. 동석했던 교수 한 명은 우리 대화가 너무 유익하고 흥미롭다며 날 새며 토론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우주, 영성, 끌림의 법칙, 우리는 과거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와 같은 주제로 열띤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에서도 이런 주제로 이야기해 본 경험이 없는데 인도에서 그것도 영어로 이런 주제를 토론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창업주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선물로 자신이 감명 깊게 읽었다는 영성과 관련된 책 3권을 선물했다.
9. 그 중 한 권이 'Code Name: God'라는 책이다. 라식 수술에 사용되는 엑시머 레이저의 상업화로 백만장자가 된 인도 출신 양자물리학자 마니 바우믹의 영적 여정이 주제다. 양자역학과 우주론을 공부하다 보니 궁극적으로 하나의 근원을 만나게 되었으며, 그 하나의 근원이 결국 많은 종교가 이야기하는 신과 같더라는 주장이 핵심이다. 엑시머 레이저의 상업화로 많은 돈을 벌었지만 오히려 공허함을 느꼈던 마니 바우믹은 양자역학과 영적 전통 사이의 관계성을 연구하다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창업주가 이 책을 내게 선물한 이유가 이해됐다.
10. 어제까지 우울했던 마음이 2025년이라고 새해라고 하루만에 많이 풀렸다. 세상 많은 일이 우리 마음에 달렸다는 좋은 증례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미 결과를 예비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삭풍이 부는 추운 겨울에도 봄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다. 긍정과 희망에 대한 상상이 우리의 힘이다.
2025년 1월 1일
신상희
'낙서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월 29일 (0) | 2024.12.30 |
---|---|
행복 (2) | 2024.11.12 |
흥미롭고 유익한 구절과 정보 (24) | 2024.11.02 |
오송 궁평2지하차도 재개통 (0) | 2024.11.02 |
'독도의 날' 써보는 옛 이야기 (1) | 2024.10.25 |
윌리엄 블레이크를 읽다가... (2) | 2024.10.14 |
인구변화와 파크 골프장의 대유행 (3) | 2024.10.13 |
저녁 반찬으로 조미김을 먹었다. (2) | 2024.10.06 |
비 맞으면 차라리 기분이 좋다. (1) | 2024.10.03 |
민족종교 금강대도 이야기 (1) | 2024.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