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종일 행복했다. 왜 행복했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저 이유 없이 행복했다. 이른 아침 일어나 거실의 블라인드를 올리자 밝은 햇살과 함께 행복이 쏟아져 들어왔다. BRT를 기다리며 벤치에 앉아 린킨 파크를 듣는데 음악 자체로 삶이 만족스러웠다. 아까 직원들과 술 한잔하고 돌아오는 전철 밖의 풍경도 생경했지만 아름다웠다. 바닥의 붉은 단풍잎, 젊은 연인들의 장난, 아빠 손을 꼭 잡고 걷는 어린아이, 전화 통화를 하며 밝게 웃는 중년의 여인. 모두가 사랑스러웠고 삶의 충만함이 느껴졌다.
아침에 팔굽혀펴기 47개를 했다. 올 초부터 매주 한 개씩 팔굽혀펴기 수를 늘려가고 있는데 이번 주에 47개에 도달했고 곧 목표했던 52개는 거뜬히 달성할 기세다. 책은 45권째 읽고 있다. 더디지만 1주에 한 권씩 올해 52권의 책을 읽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책 많이 읽던 20대보다 낫다. 거창하고 대담한 목표가 아니라 작지만 달성할 만한 작은 목표를 습관으로 만들려 노력했다. 예전에는 열심히 사는 사람들 보며 저렇게 열심히 살면 안 피곤한가 나는 저렇게 절대 못 산다 했는데 막상 열심히 살아 보니 오히려 안 피곤하고 더 행복하다. 시간과 에너지가 남는다.
행복하다고 했지만 불안과 우울이 없지는 않다. 회사 일이 내 맘대로 되지도 않으며 개인적인 고민과 두통거리가 해소되지도 않았다. 오늘도 회의하며 몇 번이나 내적으로 걱정과 우울이 오고 갔는지 모르겠다. 다만, 걱정하다가도 예전과 다르게 빠르게 정상으로 복귀한다. 회복력이 좋아졌다는 뜻인데 실패나 실수를 예전보다는 덜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실패나 실수란 그냥 삶의 일부분이며 일상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아, 다른 길을 가라는 하늘의 뜻이구나 생각한다.
과거는 바꿀 수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현재에 충실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단편적이다. 이상한 이야기 같지만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 있고 앞으로 올 미래 또한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 원효대사의 해골물 이야기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우화는 과거에 대한 인식과 정의를 바꿨을 때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이야기한다. 맞다. 우리는 현재에 살고 있다. 그리고 살고 있는 현재에서 과거를 바꿀 수 있으며 그렇게 바뀐 과거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새로운 가능성과 방향을 보여준다. 지나간 일에 대한 인식과 정의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본인뿐이기 때문이다. 지치고 상처투성이인 자신에게 고생했다고 위무해도 좋은 이유다.
2024년 11월 11일
신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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