빤스의 추억.
90년대 중반이었지 싶다. 사귀던 여자와 결혼을 진지하게 고민하던 친구가 추석을 맞아 고향 가는 여친을 바래다준다며 목포까지 내려왔다. 백수 대학생으로 일찍 광주에 내려와 뒹굴거리던 내게 목포역에서 함께 보자며 녀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여친이 어떤 사람인지 좀 배운(?) 친구로서 의견을 달라는 둥 어쩌는 둥 했지만 들뜬 목소리에 자랑질이 가득했다. 할 일도 없고 목포로 향했다. 목포역에서 만난 둘은 선남선녀였다.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부럽기도 하고 내 신세가 처량하기도 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역 광장 쪽에서 소란이 일더니 쌍욕이 들렸다. "이런 XX놈이 XX라고 환장을 했나?" 남성 둘이 드잡이 중이었다. 한 명은 작고 왜소했고, 다른 한 명은 키가 크고 덩치가 제법이었다. 작은 이가 계속 머리를 들이대며 도발했다. 덩치 큰 남자가 작은 이의 머리를 한 손으로 밀어내며 한 손으로는 연신 때리려는 시늉을 했지만 자제하는 게 역력했다. 작은 이가 계속 들이대니 참다 못 했는지 "이런 XX놈이!" 하며 갑자기 윗옷을 찢듯이 벗어젖혔다. 허리띠도 풀더니 바지까지 벗었다. 시간이 멈춘 듯 모든 이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빤스만 입은 그의 몸은 전성기 역도산을 연상시켰다. 운동으로 단련한 듯 구리빛의 몸은 단단했고 묘하게도 빛을 냈다. 무엇보다 종아리부터 시작해 허벅지, 엉덩이를 지나 등과 어깨까지 솟구쳐 오르는 두 마리의 용이 인상적이었다. 주변 모든 이들이 갑자기 조용해졌고, 작은 이는 양처럼 순해졌다. 덩치 큰 이가 계속 쌍욕을 해대며 죽이네 살리네 하던 차에 경찰이 도착했다. 경찰은 빤스 입은 이에게 연신 "아따, 선생님이 참으쇼 잉." 하면서 뜯어말렸다. 누구도 체포되지 않고 소란은 진정되었다. 그때 깨달았다. 이게 빤스의 힘이구나. 공권력도 어찌할 수 없는.
우리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며 ‘빤스의 위대한 힘’을 자각하지 못한다. 빤스만 입고 타인 앞에 나서는 행위는 단순한 노출이 아니다. ‘쪽팔림’이라는 자기희생을 통해 도달하는 영적 깨달음이며, 내면에 잠재된 힘을 물리적으로 외부에 투사하는 상징적 행위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공중부양을 시도하던 에어장이 다른 옷은 다 벗었어도 빤스만은 입었던 이유이며, 사랑이 제일인 교회의 목사가 신도의 빤스에 유독 관심을 기울였던 까닭이다. 삼손의 힘이 머리카락에 있었다면, 우리에겐 빤스가 있다. 빤스는 힘이자, 자긍심의 원천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 때면 기꺼이 빤스만 걸친 채 당당히 맞서라. 특검조차도 빤스만 입은 당신을 어찌하지 못할 터이니.
2025년 8월 1일
신상희
'낙서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증오와 배제가 아니라 사랑과 연대가 필요한 이유. (0) | 2025.09.18 |
|---|---|
| 요즘 자동차 디자인 (2) | 2025.09.02 |
| AI에 관한 생각 (2) | 2025.08.31 |
| 20년 된 에이컨 (3) | 2025.08.25 |
| 한국에 '차별금지법'이 필요 없는 이유 (1) | 2025.08.21 |
| 오래된 복합기와 이별 (2) | 2025.07.14 |
| 현금 필요 없는 사회의 도래 (1) | 2025.07.04 |
| 주역의 64괘 중 첫 괘 '중천건괘' (0) | 2025.05.28 |
| 지도자 잘 뽑아야 하는 이유 (2) | 2025.05.28 |
| 선택과 운명 (3) | 2025.05.2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