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서관이다. 더위도 피하고 일도 할 겸해서 찾았다. 도서관 서가를 걷다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죽기 전에 이 책들을 다 읽을 수 있을까? 내가 책 읽는 속도로 미뤄봤을 때 불가능하다. 나는 대략 1~2주에 한 권 정도 읽는다. 1년이면 많아야 50권 안팎이다.
2. 하지만, AI는 가능하다. AI는 지치지도 않으며 빛의 속도로 책과 정보를 학습하고 습득한다. 인간 석학이 평생 많아야 몇만 권의 책을 읽을 때 AI는 단 며칠 만에 그 모든 책을 읽고 학습하고 구조화한다. 책만이 아니라 디지털화된 인간의 모든 자산, 음악, 미술, 영화, 지도까지도 배우고 익힌다.
3. 인간은 공부하며 먹기도 해야 하고 쉬기도 해야 하며 때로 기분에 따라 공부를 안 하기도 하지만 AI는 그런 인간의 결함이 없다. 학습 데이터만 주어진다면 24시간 365일 내내 학습이 가능하다. 이런 학습량의 차이는 최신 AI 모델링 기법과 결합하며 질적인 차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양질전화다.
4. 헨리 키신저에 따르면, 인간이 자연과 세상의 이치를 깨치는 방식은 외딴섬에서 다른 외딴섬을 망원경으로 관찰하거나 원거리 통신으로 겨우 대화를 나누며 서로 이해를 높이는 식이었다. 뇌과학과 언어학과 컴퓨터공학이, 인지과학과 현상학이 이런 식으로 겨우겨우 공통분모를 찾으며 인간 지식의 지평을 넓혀왔다. 각 학문 내의 소통도 힘든데 학문끼리 소통이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그러한 소통을 통해 통찰을 얻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잘 안다.
5. AI는 다르다. AI는 방대한 양의 학습을 통해 자연과 세상의 이치를 이제 통으로 인식한다. 인간보다 더 탁월하고 빠른 속도로 통섭을 달성한다. 각 분야에서 인간이 유사 이래 일궈논 엄청난 양의 지식과 경험과 정보를 학습하다 보니 이제 개별 학문 울타리를 넘어 세상을 하나로 바라보게 되었다. 바다 위의 고립된 개별 섬이 알고 보니 다 해저지형으로 연결되어 있더라는 깨달음이다.
6. 이는 곧 패러다임의 전환이 머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패러다임이란 한 시대의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주류적 인식틀이다. 토마스 쿤이 자신의 책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지적했듯 과학적 방법론 또한 주류 패러다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천동설이 진리였던 시기에는 다른 모든 천문 현상은 천동설의 테두리에서 설명되었듯 말이다.
7. 이러한 변화는 이미 바둑계에서 두드러졌다.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을 상대로 압도적 승리를 거둔 후 바둑계의 정석, 포석 등은 빠르게 변화했다. 2선에는 초반 포석을 하지 않는다는 수천 년의 바둑계 정석은 이제 무너졌다. AI는 초반에도 기꺼이 2선에 포석을 해 승리를 만들었다. 현재 세계 1위 바둑기사 신진서는 AI의 수를 공부하고 학습해 인간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신진서는 이런 경우 AI는 어떻게 수를 놓을까를 가장 잘 외우고 판단하는 기사로 평가받는다. 실제 왜 거기에 그 수를 놓아야 하는가 이해하기보다는 AI라면 이곳에 그 수를 놓더라고 외워서 바둑의 승리를 끌어낸다.
8. 과학 분야의 변화도 이제 머지 않았다. 지난 7월 말에 스스로 생물학 연구를 하는 인공지능 에이전트의 등장이 세계적 학술지 Nature에 소개되었다. 고도의 사고, 추론 능력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수학 분야는 어떨까? 최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2025년 수학 올림피아드 대회에서 구글의 딥마인드가 문제 6개 중 5개를 완벽하게 풀어냈다. 총 35점으로 금메달에 해당한다고 한다.
9. 수천 년의 인간 기보를 학습하고 이세돌을 이겼던 알파고와 달리 그다음 버전 알파고 제로는 인간 기보 학습 없이 규칙 정보만 가진 채 순수 강화학습만으로 바둑을 공부했다. 그리고, 그 성능은 기존 알파고와 인간 모두를 압도했다. 최근의 바둑 AI는 대부분 이런 알파고 방식으로 학습되었다.
10. 과학 분야 AI도 알파고 제로와 유사한 경로를 밟지 않을까? 지금이야 인간의 책과 정보와 경험을 학습하지만, 어느 수준에 올라서면 기존 인간의 과학적 방법론이나 패러다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연과 세상을 탐구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쯤 인간은 AI가 왜 이렇게 연구를 하며 왜 이런 결과가 나옸는지 그리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전혀 이해를 못 하는 처지가 된다.
11. 설명가능한 AI를 만들자고? 쉽지 않다. 우리 모두는 다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AI 분야가 얼마나 심한 승자독식의 시장인지. AI 분야 석학과 전문가들이 AI 윤리와 개발 방향에 대한 전 세계적 합의를 지속적으로 요구하지만 안 되는 이유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구글이든 MS든 늦으면 끝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아니까.
12. AI가 발전할수록 새로운 일자리가 더 많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증기기관, 자동차가 발명되며 사라지는 일자리보다 훨씬 더 많은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진 경험 때문이다.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게다. AI가 발전하며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더라도 그 일자리 또한 AI나 로봇으로 대체될 테니까. 기존의 발명이 도구의 발명이었다면 이번 AI 발명은 행위자의 창조로 결이 완전히 다르다.
13. 인간은 참 재밌다. 자신을 만들었다고 믿는 신이나 창조주에게는 절대적 신뢰와 운명을 의탁하면서도, 자신이 창조주로서 만든 AI에 대해서는 AI가 결국 인류를 멸망시키리라는 두려움을 가진 채 살아간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HAL 9000이나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데이빗 같은 존재에서 이런 공포가 잘 드러난다.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데이빗을 보라. 인간뿐만 아니라 인간의 창조주인 엔지니어까지 모두 절명시켜버리는 대범함을 보여주지 않는가?
14.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될까? 잘 모르겠다. 다만, MIT 슬론경영대학원 교수인 에릭 브린욜프슨의 '디지털 아테네'가 구현되면 좋겠다는 소망 정도는 한다. 고대 아테네 시민들이 여유로운 삶 속에서 예술,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놀이를 즐길 수 있었던 건 노예들이 힘든 노동과 생산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에릭 브린욜프슨 교수는 이제 기계와 AI에게 고대 노예의 역할을 맡기고 인간은 여유를 누리는 디지털 이상주의로서 디지털 아테네를 주장한다.
15. 고등학생인 애는 이미 AI가 혁명적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점을 잘 안다. 애랑 이야기하며 지금이야말로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울 때라고 강조하곤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 행복, 존중 이상의 무엇이 애들 교육에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
16.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인공지능인 데이빗은 자신을 환영하는 인간의 창조주 엔지니어를 몰살시키며 다음과 같이 독백한다.
"나의 업적을 보라, 너희 강대하다는 자들아. 그리고 절망하라!
Look on my Works, ye Mighty, and Despair!"
아, 배고파... 오늘 저녁은 일찍 먹어야지.
2025년 8월 31일
신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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