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질랜드에서 한국 오다가 동영상을 하나 봤는데, 수면과 삶의 질, 그리고 사회적 성취에 관해 연구하는 스탠포드 대학교 체리 마(Cheri Mah) 교수의 인터뷰였다. 이거 뭐지 하고 틀었다가 거의 1시간 반 동안 봤다.
https://www.youtube.com/watch?v=fybq6V74qRk
대담의 긴 내용을 요약하자면, 잠을 잘 자고 많이 자야(최소 7~9시간) 학생들은 공부를 잘하고, 운동선수들은 부상 없이 경기를 잘하고 더 자주 이긴다. 숙면을 삶의 중요 목표로 두고 하루 생활도 숙면에 맞춰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다.
그녀의 이야기는 모두 과학적 실험과 통계에 기반한다. 농구 선수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수면 시간을 하루 평균 8~10시간으로 늘렸을 때 선수들의 스프린트와 슈팅 정확도가 9~12%가량 상승했다. 이는 숙면을 통해 운동 능력 뿐만 아니라 인지 능력, 반응 속도, 기분 조절 능력이 모두 향상됨을 의미한다.
마 박사는 "수면은 수동적인 휴식이 아니라 뇌가 학습한 내용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Consolidation)하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즉, 잠을 제대로 자지 않으면 문서의 '저장' 버튼을 누르지 않고 컴퓨터를 닫는 것과 같다.
미국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관찰된다. A 학점을 맞는 학생들은 B 학점 학생보다 평균 수면 시간이 15분가량 더 길며, B 학점 학생들은 C 학점 학생보다 대략 11분 정도 더 잔다. 사당오락의 신화와 달리 잠을 많이 자는 학생일수록 성적이 더 좋은 셈.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학력고사나 수능시험에서 만점 맞았던 이들이 공통으로 했던 말이 있다. "학교 수업에 충실하고 하루 8시간씩 잤습니다."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잠을 줄여 확보한 시간을 공부 시간으로 착각하지만, 오히려 이것이 우리 아이들의 뇌를 망치고 성적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원인일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퍼질러자며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고 밤에는 다시 카페인과 에너지 드링크로 뇌를 자극하는 방식은 결코 공부에 효율적이지도 지속적이지도 않다. 이미 과학이 증명했다.
규칙적인 운동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들어가면 공부하라며 아이들의 운동 시간을 부모가 나서서 차단하는데 이거야말로 아이들의 성적을 떨어뜨리는 행위다. 쉽게 말해 운동은 아이들의 뇌를 위한 가장 쉬운 영양제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절대 능사가 아니다.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는 둥 얼마나 진득하게 앉아 있는지가 성적을 결정한다는 둥 그런 비과학적이고 증명되지도 않은 남들의 이야기에 현혹될 필요가 전혀 없다.
하버드 의대 존 레이티(John Ratey)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유산소 운동은 뇌세포를 자라게 하는 물질의 생성을 촉진한다. 미국 네이퍼빌 센트럴 고등학교(Naperville Central High School)의 사례를 보면, 정규 수업 전 강도 높은 체육 수업(0교시 체육)을 실시한 결과, 학생들의 문해력과 과학 성적이 최상위권으로 급상승했다. 운동 직후 뇌는 학습에 최적화된 각성 상태가 되며, 고차원적인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이 활성화된다.
https://sports.news.nate.com/view/20220805n03139
마지막으로, 고진감래, No Pain No Gain, '고통 없이는 성적도 없다'는 믿음도 깨져야 한다. 긍정 심리학의 창시자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이나 연세대 김주환 교수에 따르면, 행복한 학생이 공부도 더 잘한다. 즉, 공부를 잘해서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행복해서 공부를 더 잘하더라는 거다.
불안과 공포는 뇌의 시야를 좁히고 생존 본능(투쟁-도피 반응)만 자극하지만, 긍정적 정서는 도파민 분비를 통해 뇌의 유연성을 높이고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강화한다. 기분이 좋을 때 아이들은 더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고, 실제로 문제도 잘 풀고 성적도 좋다. 유튜브에 있는 EBS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면, 같은 수준의 초등학생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한 사례가 나온다. 한 그룹에게는 수학 시험 직전에 지난 1주일 동안 속상하고 기분 나빴던 경험을 적게 하고, 다른 한 그룹에게는 시험 직전에 지난 1주일 동안 행복하고 기뻤던 경험을 적게 한 뒤 같은 수학 시험을 보게 했다. 결과는 행복하고 기뻤던 경험을 적은 아이들이 유의미하게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G-tREfYVW0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늦은 밤 공부와 카페인 음료와 밤샘 공부가 아니다. 오히려 과학은 그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7~9시간의 충분한 수면, 규칙적인 운동, 긍정적인 정서 지원이 그것이다. 애들의 행복한 삶을 보장해야 성적도 잘 나오더라가 과학적 결론이다.
"그만 놀고 이제 공부 좀 해라"가 아니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나가서 좀 놀아라"고 말하는 것이 어쩌면 자녀의 성적 향상을 위한 진짜 과학적 전략일지도 모를 일이다. 사당오락, 고진감래는 역사의 뒤안길로 넘길 때도 됐다.
2025년 11월 25일
신상희
'낙서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동동주와 약 봉지 (1) | 2025.12.31 |
|---|---|
| 삶의 의외성과 우연, 그리고 인연(因緣) (1) | 2025.12.21 |
| 달리기가 주는 치유의 기적 (1) | 2025.12.16 |
| 2025년 12월 8일 달리기 기록 (0) | 2025.12.08 |
| '우르르'에서 '혼자'로, 여행이 보여주는 시대 변화 (0) | 2025.11.27 |
| 대학 시험 평가의 추억 (0) | 2025.11.13 |
| 망한 왕조의 무덤인 피라미드 옆에 고층 아파트를 세워 카이로의 주택난을 해소하자! (0) | 2025.11.09 |
| 삶의 위안에 관하여... (0) | 2025.10.16 |
| 김민아의 내 사랑 내 곁에 (0) | 2025.10.14 |
| 증오와 배제가 아니라 사랑과 연대가 필요한 이유. (0) | 2025.09.1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