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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4일 Early May Bank Holiday를 맞아 북 아일랜드로 짧게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그때 기억을 여기 남겨 본다. 


잉글랜드에서 북 아일랜드를 가려면 비행기를 타거나 혹은 배를 이용해야 한다. 바다 건너 아일랜드 섬으로 가야 하니까. 저가 항공을 이용할까 하다가 숙박 비용과 현지 렌트비 등을 따져보니 그냥 차를 페리에 싣고 가서 배에서 숙박하는 편이 더 나았다. 딸아이도 배에서 자는 걸 아주 좋아하기도 했고. 


Stena Line의 리버풀 <-> 벨파스트 라인 페리를 이용했다. 보통 하루에 두 편의 페리가 오전과 밤에 운행한다. 우리 가족 같은 경우 리버풀에서 벨파스트로 갈 때 밤 10시 페리를, 올 때 밤 10시 반 페리를 이용했다. 편도로 8시간에서 8시간 반 정도 걸려 항상 오전 6시 반에 목적지에 도착하도록 되어 있다. 페리 표는 http://ferrycheap.com/을 이용해 예약했다. 확실히 Stena Line 웹페이지에서 하는 것보다 더 싸다. 


잉글랜드에서 북 아일랜드로 가는 건 같은 영국 내 여행이지만 그래도 배 탈 때 신분증을 요구한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리버풀에서 받았던 보안검색이 도버에서 프랑스 칼레 갈 때보다 더 심했던 느낌이다. 


여기서는 리버풀을 거쳐 벨파스트와 데리까지의 사진을 공유해 본다. 


리버풀 버크헤드(Liverpool birkenhead)에서 배 타기 직전 모습. 


2층 침대 구조로 4명까지 잘 수 있는 패밀리룸을 예약했다. 객실은 대략 이렇게 생겼다. 화장실, 샤워시설 등이 모두 구비되어 있다. 


8시간 가량 자고 나니 벌써 벨파스트 도착. 


아침 6시 40분 경에 벨파스트를 출발하면 데리에 대략 8시 18분 쯤에 도착한다.


오전 일찍 데리에 도착. 근데 너무 일찍 도착해서 쇼핑몰도 토스트를 파는 곳 빼고는 모두 문을 닫은 상태. 


아침은 COSTA 커피숍에서 파니니랑 빵이랑 사서 가볍게 식사. 가격도 잉글랜드보다 훨씬 싸고 맛있었다. 생각보다 딸아이가 잘 적응해 줘서 고마울 뿐. 


데리(Derry) 관광 지도. 사실 데리의 공식 지명은 런던데리(Londonderry)다. 하지만, 아일랜드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데리 시민들은 이 런던데리에서 런던을 빼고 다 데리라고 부른다. 런던데리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영국과의 통합파들이다. 데리는 1972년 소위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유명하다. 영국 군인들이 비무장 아일랜드 시위대에 발포해 14명이 숨진 사건. 


아래 사진처럼 Londonderry라고 표시된 많은 교통표지판들에 라카칠을 해서 London을 지워버린 경우가 많다. 하기사 IRA와 영국이 평화협정을 맺은 게 1998년의 일이었다.  'The Troubles'라 불리는 북 아일랜드 분쟁 기간 동안 3,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아직도 그 상흔은 북 아일랜드 곳곳에 남아 있다. 

<Image Source: http://en.wikipedia.org/wiki/Derry#/media/File:Vandalised_road-sign_Londonderry_P3010060.jpg>


데리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도시다. 아래처럼 넓은 성벽을 타고 도시를 한바퀴 돌 수 있다. 


역시 성벽길. 다른 도시의 성벽길보다 폭이 훨씬 넓다. 


성벽길을 따라 도시를 한바퀴 돌기 시작. 


옛 대포들이 성벽 귀퉁이에 남아 있다. 예전 역사를 반영하는 것. 


런던이라는 이름 자체가 통합주의자들을 상징한다. 


1998년 평화 협정 이후 겉으로는 많이 평온해졌지만 아직 데리 곳곳은 이렇게 긴장이 남아 있다. 특히, 데리 서안(West Bank)는 아일랜드 국경과 바로 접해 있는 곳으로 아일랜드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곳이다. 이곳을 아일랜드에 떼 주는 게 맞다는 이야기가 영국 정치인의 입에서 나왔을 정도. 하지만, 이곳에도 영국 통합주의자가 살고 있고 자신들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음을 이렇게 시위하고 있다. 굴복이란 없다는 선언과 함께. 


유니온잭과 영국을 상징하는 적, 청, 백의 패턴이 눈에 띈다. 북 아일랜드 여행 중 저런 무늬가 도로에 깔린 곳이 있다면 그곳은 영국 통합주의자들, 즉 신교도들이 사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St Columb's Cathedral


성곽에 있는 옛 대포. 


장난치며 즐거워하는 딸아이. 


성벽 옆으로는 이렇게 산책길과 공원이 조성되어 있기도 하다. 


비숍 스트리트(Bishop Street)의 모습.


성곽길을 따라 걸으며 한 장. 


딸아이. 


무슨 박물관의 철책인데 꽤나 예술적으로 꾸며져 있다. 


성곽길의 모습. Bogside 쪽이다. 


1972년 시위 중 영국군의 발포로 14명이 사망한 Bogside 쪽의 모습이다. 


역시 Bogside 쪽 모습. 


장로 교회.




1972년 Bogside Massacre 추념비를 찾아 가는 길. 


북 아일랜드의 슬픈 사연들은 데리의 곳곳에 남아 있다. 


1972년 1월 30일 Bloody Sunday 추념탑. 1972년 1월 30일 영국군의 발포로 비무장 아일랜드인 14명이 숨졌던 북 아일랜드 데리시 보그사이드다. 이 사건으로 북아일랜드공화군을 중심으로 하는 강경파의 무장투쟁이 강화되며 1998년 평화협정체결때까지 3,500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 사건 발생 26년 만에 다시 시작된 제2차 진실조사위원회는 장장 12년간 한국돈으로 3,200억원이 넘는 예산을 사용하며 이 사건을 파헤쳐 이 사건이 영국군의 명백한 실수이자 사실상의 살인에 해당한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이에 따라 2010년 데이비드 카메론 영국 총리는 정부를 대신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1972년 Bloody Sunday에 대한 설명. 


영국 총선을 앞두고 IRA의 공개 정치조직인 신페인당의 홍보물이 눈에 띈다. 


보그사이드의 벽화. 


보그사이드의 벽화.


역시 보그사이드의 벽화.


데리 중심가 모습. 


데리 길드홀의 모습. 


데리 길드홀의 모습. 


데리 길드홀의 모습. 


Forum 건물 앞에서... 


Forum 건물 앞에서 숨어 보자. 


Forum 건물 앞에서 완전히 숨음. ㅎ 



2015년 5월 8일

신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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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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