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살 때 애 학교에 가서 이런저런 자원봉사를 했었다. 아내야 날마다 출근하느라 바빴지만 나는야 뭐 딱히 하는 일도 없어 가끔 몸푸는 기분으로 참가하곤 했다. 그때마다 인상적이었던 게 학교에서 어떤 행사나 활동이 있으면 꼭 위험평가를 먼저 수행하고 그 결과를 교직원과 학부모가 공유한 뒤 행사를 시작하더라는 점이었다. 


위험평가라고 해서 뭔가 거창한 게 아니다. 계획된 행사와 관련해 사고가 날만한 상황을 가정하고 거기에 대해 위험도를 계산하고 그 대처방안을 기술해 놓은 것이다. 전문가가 하는 것도 아니고 교직원이 하거나 아니면 학부모랑 같이 하거나 그랬다. 여기서 위험도는 사고가 났을 때의 치명적인 정도와 사고가 날 확률의 곱으로 계산된다.(위험도 = 치명도 * 사고확률) 둘 다 5점 척도였다. 위험도가 5가 넘으면 그런 위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교직원, 학부모, 학생에게 주지시킨 뒤 행사를 시작했다. 


첨부한 사진은 자원봉사 나갔다 교육 받을 때 찍어 놓은 것이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두 블록 떨어진 실내체육관에 가서 다른 학교 학생들과 체육활동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과 그 대처방안에 대해 기술해 놓은 위험평가문서의 일부다. 기억으로는 전체 문서가 양면으로 4~5쪽 가량 했던 것 같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학생들을 인솔하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매우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이번 강릉펜션사고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떠나기 전 이런 위험평가를 한 번 했으면 어떤 위험이 식별되고 또 어떤 대처방안이 나왔을까? 일산화탄소 중독 같은 위험은 생각치 못 했더라도 다른 여러 사고위험들은 고3학생들을 다뤄본 경험에 근거해 많이 식별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런 위험에 대한 대처방안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번 같은 큰 사고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이제 학생들은 죽거나 다쳤고 남은 어른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바쁜 것 같다. 교육부는 기대에 어긋남 없이 체험학습 전수조사 카드를 꺼내들었고 선생님들과 교원단체는 문제는 체험학습이 아니라 숙박업소 안전관리 미흡이라고 맞서고 있다. 수능 후 체험학습을 없애면 이런 사고가 없어질까? 모든 숙박업소의 안전관리가 완벽하면 수능 후 고3들끼리 이런 여행을 떠나도 아무 사고가 없을까? 떠난 학생들의 빈자리에 어른들이 채워야 할 것은 비난과 책임전가가 아니라 사고의 전환과 대안 제시겠지만 그 길은 멀고 험해 보이기만 하다.


2018년 12월 20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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