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 전 애가 학교 계단에서 굴렀다. 발목을 다쳤는데 학교 보건실에서는 스프레이 정도만 뿌려주고 더 아프면 병원 가라고 했단다. 연락받고 집에 와보니 걷지도 못할 지경이라 바로 병원에 데려갔다. 병원에서 엑스레이 찍고 초음파 검사해 보니 다행히 뼈를 다치지는 않았고 인대가 좀 늘어났다고 한다. 발에 깁스하고 집으로 돌아오며 침울한 애에게 내 어릴 적 이야기를 해줬다. 망토를 두르고 슈퍼맨이라고 옥상에서 뛰어내렸다가 다리가 부러졌던 이야기며 놀다가 팔이 부러져 한밤중에 작은 당숙 등에 업혀 산 너머 읍내 접골원에 다녀왔던 이야기며 말이다. 자기보다 아빠가 더 자주 다쳤다는 데 안도를 하는 눈치다. 애가 왜 그때는 깁스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본다. 그냥 없었다고 이야기해줬다. 깁스 대신 할아버지가 날마다 무슨 약초 같은 걸 따다가 돌로 찧어 비닐로 싸줬던 게 다였으니까. 


2. 애가 위인집 WHO 시리즈에 존 레논은 있는데 왜 프레디 머큐리는 없는지 물어본다. 아마도 프레디 머큐리가 양성애자였고 AIDS에 걸려 죽었기 때문에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그에 관한 책을 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해 줬다. 딸애가 '보수적인 한국 사회'가 무엇인지 물어보길래 내 의견을 말해주고 애 의견을 물어봤다. 또 AIDS가 어떤 병이며 치료 가능한지 AIDS 환자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딸애나 나나 양성애자이든 AIDS 환자이든 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 동의했다. 뒤이어 사람은 왜 죽는가, 늙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같은 이야기를 나눴다. 낮은 수준이지만 애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가 많아진다는 점은 기쁜 일이다. 

3. 내 생일날 아침에 이제 낼모레면 아빠가 쉰이라며 놀려댄다. 그러게 말이다. 애는 폭풍성장하고 아빠는 늙어간다. 그래도 딸애의 놀림이 기특하고 예쁠 뿐이다. 바라는 것 없다. 부디 건강하기만 해라. 

2018년 12월 23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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