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혁신적인 스타트업이 공공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성장하기 어려운 까닭이 뭘까? 아마 답을 다 알고 있을 거다. 고칠 생각이 없거나 그냥 포기하거나 아니면 다들 입 다물고 있을 뿐.

 

공공입찰을 보면, 정량적 평가 기준에 신용평가, 실적, 그리고 자격요건이 거의 필수 요건으로 포함되어 있다. 이제 막 창업해서 신용평가 등급도 낮고 실적도 없으며 비싼 장비나 소프트웨어가 필요한 자격 요건도 없는 스타트업이 이런 기준을 통과하며 사업 수주를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스타트업은 기존과 다른 혁신적인 방식으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서 시장을 파괴적으로 재편하는 곳이다. 그런데 평가는 여전히 과거의 틀에 얽매여 있으니 스타트업이 성장할 틈이 있겠는가?

 

내가 종사하고 있는 공간정보 분야의 예를 들어보자. 지도를 만드는데 항공기를 이용하든 위성을 이용하든 헬기나 드론을 이용하든 아니면 개별적으로 직접 현장 측량을 하든 그 방식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성과품의 품질에 대해서만 정확히 검수하면 그만인 것을. 즉, 수요처가 정한 정확도와 정밀도를 만족하는지 여부만 판단하면 된다. 그럼에도 공공사업에서는 항측업이니 무슨업이니 별의별 업종을 다 걸어서 사업이 나온다. 스타트업이 이런 업 등록하기가 쉬울 것 같은가? 업 등록은 대부분 돈과 직결된다. 실적은 어떤가? 이제 기술 하나로 창업한 지 얼마 안 된 회사에 1억원 이상 유사 실적 몇 건을 요구하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인가? 사실상 이런 기준은 스타트업의 사업 참여를 박탈하려는 합법적 핑계일 뿐이다. 신용평가등급에 따른 점수차별도 마찬가지다. 창업하고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신용등급 BBB 이상을 받아 오라는 건 거의 불가능한 요구다.

 

서양 격언에 사과는 사과와 오렌지는 오렌지와 비교하라는 말이 있다. 사과와 오렌지를 섞어서 비교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진정 정부가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성장 기회를 줄 생각이라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기존 기득권자(incumbent)와 스타트업을 경쟁시킬 것이 아니라 기존 사업자는 기존 사업자끼리 스타트업들은 스타트업들끼리 경쟁하는 리그를 만들어 주는 편이 낫다. 스타트업들끼리는 다들 계급장 떼고 기술과 기술의 진검 승부를 하는 거다.

 

내일 11월 1일이 가이아쓰리디 창업 19주년이다. 문득 주변에서 힘겹게 스타트업을 이끌고 있는 지인들을 보며 안쓰러운 맘에 글을 썼다. 이 땅의 모든 창업가와 기업가와 혁신가에게 행운과 성공이 함께하기를 바란다.

 

2019년 10월 31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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