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낙서장 2007. 10. 10. 01:23
1. 퇴근길에 땀으로 범벅된 등과 목을 돌아 시원한 바람이 불어 들어온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봄 소풍을 무등산 중봉이라는 곳으로 갔었다. 아직 겨울의 기운이 남아 있었지만 봄을 이길 수는 없었던 제법 차갑고 매서웠던 바람이 그곳에서 나를 맞았다. 남방 소매와 옷깃을 통해 들어와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새롭게 깨우던 그 바람이 오늘따라 왜 이리 그리운지 말이다.

2. 영화를 봤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II, 맨인블랙 II, 마이너리티 리포드를 봤다. 워낙 SF 영화를 좋아하고 즐기는 지라 거의 여름철에는 주저없이 SF 영화를 선택해 보곤 한다. 하지만 이제는 내 몸의 감수성이 거의 모두 말라버렸음을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곤 한다. 너무 말라버려 쩍쩍 벌어져 피가 나려고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영화에 몰입할 수 없고, 영화를 그대로 볼 수 없으며, 영화를 느낄 수 없는 채 그저 또 하나의 시간 때우기로 영화보기가 전락해 버렸음을 느낄 수 밖에 없더라.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려야 내 마음이 촉촉해질 수 있을까? 비가 내리기는 할까?


3. 광한루원을 갔다. 구례에서 20분  거리여서 아내랑 오랫만에 둘이 그곳으로 놀러를 갔다. 꼭 10년만의 방문이었다. 1년에 한 번 이상 그 곳을 방문하면 부부금슬이 좋아진다고 쓰여있더구만. 하나의 문학작품이 이제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곳이 바로 광한루원이다. 춘향전이 없었더라면 과연 남원은 무엇으로 먹고 살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곳은 소설 혹은 가상이 현실을 재구성해 가고 있었다. 춘향의 초상이 걸려 있으며 춘향기념관과 월매집이 지어져 있는 곳이다. 사람이 소설을 구성했지만, 그 구성된 소설은 다시 사람을 재구성해가는 현장이라고나 할까. 마치 신이 인간을 만들었지만, 다시 그 인간은 신의 죽음과 생사여탈마저도 규정해가고 있는 현실의 모습과 매우 유사했다. 단지 원인과 결과의 직선적 역사관이 아닌 원인이 결과가 되며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는 회돌이 현상말이다. 큰 회돌이 속에 또 다른 작은 회돌이가 있으며, 그 작은 회돌이 속에 또다시 작은 회돌이가 있으며, 결국은 부분이 전체가 되며, 다시 전체가 부분이 되는 그런 회돌이 말이다.


4. 남을 미워하는 감정, 분노 이런 감정들을 어떻게 내 몸에서 쫓아내는 방법이 없을까? 시도때도 없이 찾아와 마음껏 질러놓고 망쳐 놓은 채 떠나버리는 그 감정들.. 아, 씨발.. 샤워나 하고 잠이나 자야겠다.


2002년 8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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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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